
천국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이런 풍경일 것이다. 맑은 날 슈발블랑(Cheval Blanc) 생트로페의 입구를 지나 정원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지중해가 통째로 눈앞에 펼쳐진다. 호화로운 요트들이 느리게 떠다니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앉는 순간 이미 식사의 절반은 끝난 셈이다. 유럽 여행에서 미각을 넘어 오감이 황홀했던 순간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 라 테라스(La Terrasse)를 이야기한다.
생트로페(Saint-Tropez)는 흔히 휴양지계의 에르메스라 불린다. 프랑스 남부의 수많은 휴양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목적지다. 다른 유명 휴양지들은 대개 기차로도 닿지만 이곳은 사정이 다르다. 기차는커녕 인근에 고속도로조차 없다. 렌터카로 이동해도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할리우드 스타와 억만장자들이 전용기와 헬리콥터로 들어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접근성의 불편함이 곧 희소성이 되는, 오래된 방식의 럭셔리가 여전히 작동하는 곳이다.
그 생트로페에서 최고의 호텔을 꼽으라면 슈발블랑이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프라이버시가 뛰어나고, 생트로페에서 유일하게 프라이빗 비치를 소유하고 있다. 객실 수도 극히 제한적이다. 물론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숙박이 아니라 이 호텔이 품은 레스토랑이었다.


동켈레 셰프 하면 대개 파리 슈발블랑의 미슐랭 3스타 플레니튀드(Plenitude)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결정적 무대는 이곳 생트로페다. 지금 슈발블랑이 선 자리에는 원래 라 레지당스 드 라 피네드(La Residence de la Pinede)라는 호텔이 있었고, 라 바그 도르는 그 호텔의 메인 레스토랑이었다. 동켈레는 2004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이곳 셰프에 임명된다. 2010년 미슐랭 2스타, 2013년 3스타. LVMH와의 관계 이전에 이미 3스타 셰프이자 3스타 레스토랑이었다.
2016년 LVMH가 슈발블랑 브랜드 확장을 위해 이 호텔을 인수한다. 당시 그룹이 미식으로 표현하려던 정체성이 동켈레의 요리와 맞아떨어졌고, 라 바그 도르는 그대로 계승됐다. 이후 파리 슈발블랑을 세울 때도 그가 플레니튀드를 전담하며 또 하나의 3스타가 탄생했다. 라 테라스는 그 전환 과정에서 런치 중심의 레스토랑으로 새로 태어난 공간이다.
메뉴는 단품과 코스로 나뉘고 코스는 다시 3코스 175유로, 4코스 200유로로 구성된다. 요리 하나에 25유로 차이라면 선택은 어렵지 않다. 이곳의 유일한 아쉬움은 주류다. 라 바그 도르와 와인 리스트를 공유하는데 가격이 좋은 편은 아니다. LVMH가 이끄는 럭셔리 호텔 브랜드답게, 와인 가격에서조차 낮은 허들은 허락되지 않는다.
식사는 빵으로 시작된다. 토마토와 아티초크, 올리브가 박힌 채 구워져 나오는데 프로방스가 빵에서부터 드러난다. 반죽에 올리브오일이 배어 향이 남다르고, 초록빛 안초비 바질 소스를 발라 먹으면 짭조름한 감칠맛이 더해진다. 여기에 올리브오일을 통째로 내어준다. 스페인의 오일이 쌉싸름하고 스파이시하다면 프랑스의 것은 부드럽고 향긋한 쪽으로 간다.

한입거리는 세 가지다. 덴티(Denti)라는 큰 도미류의 타르타르에 생선 콩소메를 젤리화해 얹은 것, 아몬드를 올린 참치 타르타르, 그리고 토마토 워터에 올리브오일을 섞어 한 잔씩 따라주는 음료. 생선보다 콩소메 젤리의 진한 풍미가 인상적이었고, 참치에서는 신기하게도 가츠오부시의 향이 났다. 마지막 잔은 잘 만든 가스파초의 인상을 그대로 남겼다.

첫 요리는 '그리모 땅의 토마토 회화'라는 제목의 토마토 샐러드다. 제목부터 시적이다. 하필 시즌 마지막 영업 주간, 그해 마지막 여름 토마토가 쓰였다. 일부는 절이고 일부는 마리네이드하고 일부는 생으로 간만 해서 한 접시에 모은다. 메뉴에는 '회귀적 비네그레트'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프랑스 셰프들이 옛 시절의 단순한 맛을 현대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문학적 표현이라 한다.
토마토가 조연부터 주연까지 모든 배역을 맡은 독무대이자, 그 배역을 전부 성공시킨 접시였다. 구성만 보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허브와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워낙 선명해 압도적이었다. 곁들여 나온 토마토 콜드 수프 위에는 올리브오일이 넉넉히 떠 있었는데, 이 역시 가스파초라는 단어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맛이었다.

이어지는 것은 리제트(Lisette), 어린 고등어다. 껍질을 바삭하게 구워내고 프로방스 전통 조리법인 아르티쇼 바리굴로 아티초크를 곁들였다. 생선을 절여 산미 있는 소스와 함께 내는 에스카베슈(Escabeche)의 재해석으로 보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수준 높은 어류를 자주 접하는 입장에서 고등어 자체는 다소 평범했다. 그러나 요거트를 연상시키는 소스의 산미, 금귤이 얹는 프루티한 뉘앙스가 좋았다. 풍요로운 과수원과 꽃밭이 함께 굴러다니는 듯한, 남프랑스다운 생선 요리다.

앞선 요리들이 프로방스라는 산지의 힘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었다면, 여기서부터는 하이엔드 프렌치의 기술과 구성이 전면에 나선다. 구운 파스타의 라자냐 같은 식감이 일품이었다. 이 요리에 맞춰 주문한 브누아 모로(Benoit Moreau)의 부르고뉴 블랑은 가격 대비 완성도가 놀라웠다. 프루티한 인상과 오일리한 향이 동시에 느껴지며 복합미가 좋았다.

메인은 랍스터였다. 껍질째 구운 꼬리, 애호박꽃, 그리고 랍스터 머리의 코랄로 만든 사바용 소스. 소스가 압도적이었다. 감칠맛과 산미가 동시에 살아 있는 비스크 스타일이 입에 착 감긴다. 이 색과 맛을 보며 플레니튀드에서의 식사가 떠올랐다. 소스의 방향이 확실히 닮아 있었다. 그날 저녁 라 바그 도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 레스토랑을 하나로 묶는 것은 결국 '소스의 미학'이다.
가니시인 줄 알았던 애호박꽃은 가니시가 아니었다. 한입 베어 물자 안에 랍스터 집게살이 채워져 있었다. 집게살을 꽃으로 감싼 구성이다. 온도감도 좋았고 창의성과 맛을 동시에 잡았다.


페어링으로 나온 21도의 레몬 리큐어까지 마시고 나니 한낮의 프렌치 코스를 제대로 완주했다는 감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나온 레몬 시럽을 바른 파운드케이크는 파리 슈발블랑보다 만족스러웠다.

요리 못지않게 언급해야 할 것은 서비스다. LVMH의 호텔답게 호스피탈리티의 밀도가 대단했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프로페셔널했고 의상과 동작, 말투까지 제대로 교육받았음이 느껴졌다. 프랑스 다이닝의 호스피탈리티는 그 자체로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데, 이곳은 그중에서도 돋보였다.

저녁의 라 바그 도르도 훌륭했다. 그러나 맑은 날의 라 테라스는 대체재가 없다. 요리의 완성도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경험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지중해의 빛과 바람, 프로방스의 재료, 그리고 그 재료를 다루는 3스타 셰프의 손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다음에 다시 이 곳을 찾는다면 그때는 무리해서라도 숙박까지 하고 싶다. 선베드에 누웠다가, 수영을 했다가, 하면서 이 천국 같은 풍경을 끝까지 누리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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