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술 위협에 미국 AI 관련 주식이 급락했다.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AI가 AI 모델 ‘키미 K3’를 공개하면서다. 앤트로픽과 오픈AI의 모델에 이어 세 번째로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AI 사용료는 미국 최고 모델의 3분의 1 수준이다.키미 K3의 핵심 기술은 지난 3월 세계 AI 학계를 술렁이게 한 논문 ‘어텐션 레지듀얼’에서 나왔다. 기존 고성능 모델보다 연산 효율을 25% 정도 높이는 AI 설계 방식을 제시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멋진 작업”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글로벌 AI업계는 논문 저자 명단에 주목했다. 맨 앞에 이름을 올린 공동 제1저자 천광위. 만 17세인 중국 선전의 고등학생이었다. 현재 문샷AI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AI를 공부한 지 1년 남짓 된 소년이 양즈린, 우위신 등 문샷AI 공동 창업자보다 저자 명단의 앞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천광위가 문샷AI에서 일하게 된 경로는 남다르다. 문샷AI는 그가 온라인 코드 저장소 깃허브에 올린 코드와 SNS에 쓴 기술 노트, 오픈소스 프로젝트 기여 기록 등을 살펴본 뒤 영입했다. 입사 후에는 신입 교육 대신 자사 AI 모델 개발 과정에서 막힌 문제부터 풀도록 맡겼다. 이 파격을 두고 국내외에선 인재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문샷AI만의 방식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 AI 스타트업은 나이와 학력을 따지지 않고 실력이 확인된 개발자를 데려간다. 딥시크도 젊은 연구자를 앞세워 모델을 고도화했다. AI 인재 경쟁을 단순한 머릿수 싸움으로만 보면 이 변화를 놓치기 쉽다.
과거의 인재 시스템은 교육을 마친 사람을 선발해 현장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AI 시대에는 현장에 참여하는 과정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교육이 된다. 머스크 CEO의 AI 기업 xAI도 지난해 20세의 디에고 파시니에게 AI 모델 개발의 핵심 업무를 맡겼다.
천광위의 나이는 시선을 끄는 숫자일 뿐이다. 정작 봐야 할 숫자는 그의 잠재력이 실제 연구 성과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AI 인재 경쟁의 승부처는 몸값과 관계없이 실제로 성과를 얼마나 빨리 낼 수 있는지를 중시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에도 어린 실력자가 있다. 지난해 국제정보올림피아드(IOI)에서 한국 대표 네 명은 전원 금메달을 받았다. 이 대회에선 만 20세 미만 학생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지식을 겨룬다. 기업의 비정형 데이터를 AI가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지난달 카카오벤처스 투자를 받은 알고릭스의 권동한 대표는 스무 살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천광위가 한국 고등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유망 AI 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물론 회사의 핵심 업무를 맡는 것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권 대표는 자기 회사를 차렸다. 직원 대부분도 자신과 비슷한 19~21세의 개발자로 채웠다고 한다. 어린 실력자를 우대하는 조직은 어린 창업자의 회사뿐일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 기업의 채용 문화도 크게 변했다. 학력과 나이 제한을 없앤 곳이 많다. 하지만 채용 문턱과 업무 권한 문턱은 다르다. 연공 서열과 직급 중심 의사결정은 여전하다. 젊은 직원에게 핵심적인 일을 맡겼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30대 임원 발탁이 아직도 뉴스가 되는 나라다.
이런 질서에 이유가 있다. 경험과 협업 방식이 조직 안정성과 직결됐고, 신입 사원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때 실패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AI는 숙련의 속도를 바꾼다. AI로 지식을 찾고 가설을 검증한다면 특정 문제에서는 신입 사원이 경력자보다 먼저 답을 낼 수도 있다. 경력이 무의미해진 게 아니다. 경력만으로 실력을 가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연공서열을 하루아침에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실력이 직급을 앞지를 때 조직이 이를 받아들일 통로는 열어둬야 한다. 문샷AI는 그 통로를 활짝 열었다. 고등학생 인턴 천광위에게 핵심 기술 개발을 맡긴 결정이 그를 진짜 인재로 만들었고 회사 경쟁력을 높였다. 인재는 채용하는 순간이 아니라 업무 권한을 주는 순간에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AI 경쟁에서 한국이 따라잡아야 할 격차는 기술만이 아니다. 인재를 알아보고 일을 맡기는 속도의 격차도 좁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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