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중국 하이난성 싼야 하이탕만에 있는 싼야 국제면세성 C구역. 유리 천장 아래로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들어서 있고 매장 곳곳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디올의 복층 플래그십 스토어 앞엔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계속 늘었다. 매장 내부에선 화장품과 향수 세트를 대량 구매하는 관광객들이 카운터를 채웠다. 샤넬, 루이비통, 구찌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신제품을 둘러보는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입생로랑 매장에서 만난 베이징 출신 중국인 관광객 왕모씨는 "과거엔 명품이나 고가 화장품을 사러 해외로 나갔지만 이젠 하이난에서도 동일하거나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뤼사오솨이 싼야 하이탕구 관광문화광전체육국 부국장은 "1000개가 넘는 국제 브랜드가 입점해있다"며 "누적 방문객은 2014년 개장 이후 7000만명을 넘어섰고, 면세 품목은 지난해 11월 제도 개편으로 47개까지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이난은 중국 정부가 해외로 나가던 중국인의 소비를 국내로 돌려놓기 위해 만든 거대한 실험장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하이난 전 섬 봉관(특수지역으로 분리)을 시행했다. 봉관은 하이난 전체를 중국 본토의 일반 관세 구역과 격리된 특별 관세 감독·관리 구역으로 설정한 조치다.

해외에서 하이난으로 들어오는 물품·서비스에 대해선 1선 개방을 적용해 관세를 대폭 완화했다. 하이난에서 중국 본토로 넘어가는 통로인 2선에선 통관 감시를 강화하되 장려산업 기업이 수입 원재료 등을 이용해 생산·가공한 뒤 부가가치가 30% 이상 증가한 상품에 대해선 수입관세를 면제해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섬 안에선 상품과 생산요소 이동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하고 있다.

봉관 이후 올 5월 말까지 반년 동안 하이난에 새로 생긴 기업은 13만9500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04% 급증했다. 외자기업도 1240곳 새로 설립돼 37.62% 늘었다. 같은 기간 상품무역 수출입은 1739억8000만위안(약 36조4000억원)으로 54.6% 증가했다.
중국 정부는 하이난의 봉관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던 소비의 국내 환류를 노리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 관광객이 해외로 출국하지 않더라도 하이난을 떠나는 조건으로 일정 한도까지 면세품을 살 수 있도록 한 하이난 특유의 소비 촉진 제도인 이도면세 구매액은 199억2000만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18.8% 증가했다.
구매자는 279만3000명으로 12.6%, 구매 상품 수는 1596만6000개로 7.3% 늘었다. 중국 전체 소비가 좀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숫자다. 같은 기간 중국 전체 사회소비품 소매총액 증가율은 1.3%에 그쳤다.

하이난은 새로운 이도면세 정책을 통해 기존 화장품·명품 중심의 면세 소비 범위를 반려동물 용품과 휴대용 악기까지 확대했다. 로봇청소기·진공청소기 등 소형 가전과 디지털 카메라, 소형 드론 등도 포함시켰다. 중국산 의류·신발·도자기·차·커피 등도 일정 조건 아래 면세점 판매가 가능해졌다.
중국 정부가 면세 쇼핑을 명품 소비 환류에서 생활·전자·국산 소비재까지 넓히고 있다는 의미다.
뤼 부국장은 "현재 하이난 연간 면세 쇼핑 한도는 1인당 10만위안(약 2090만원)인데 한도를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비면세 구역이지만 문화 전시를 앞세운 유통 복합시설 확충을 통한 관광객 유입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하이난의 경우 한국을 포함한 59개국 국민에 대해 관광, 비즈니스, 회의, 친지 방문 목적으로 최대 30일간의 무비자 체류를 별도로 보장하고 있다. 올 상반기 하이난 출입국 인원은 160만3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3% 증가했고 외국인은 88만3000명으로 33.2% 늘었다. 이 가운데 무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은 37만7000명으로 40.6% 증가했다.
특히 지난 5월부터 하이난과 광둥·광시·선전은 외국인 관광객이 물건을 산 곳에서 세금 환급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먼저 받을 수 있는 즉시 환급을 서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난달부터 후난·푸젠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지난달에는 1만위안 이하 출국세 환급 신청에 대해선 실물 전수검사를 하지 않고 일정 비율만 추출 검사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이런 중국 정부의 전략엔 복잡한 거시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전략적 셈법이 깔려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부터 하이난 자유무역항 구상을 직접 기획하고 추진했다. 관광과 현대 서비스업, 첨단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외국 자본과 인력을 끌어들이고 국제 관광소비센터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정부는 하이난을 쌍순환 전략의 핵심 축으로 여기고 있다. 쌍순환은 소비와 투자를 중심으로 국내 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국내 순환을 중심에 두면서 무역·외국인 투자 등 국제 순환과의 연결을 강화한다는 중국식 성장 전략이다. 해외의 우수한 상품은 관세 혜택으로, 자본·인재는 규제 완화라는 인센티브로 끌어들여 내수 시장의 질적 수준을 높이겠다는 하이난의 중장기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미·중 대립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서방 국가의 대중 압박 속에서 하이난을 통해 고수준 대외 개방 의지를 입증하려고 모습이다. 하이난에 등록해 실질적으로 사업하는 장려산업 기업에는 일반적인 중국 기업소득세율 25%보다 낮은 15%의 세율을 적용해 기업 유치에도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하이난을 통해 국내 소비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글로벌 기업에 중국 시장으로 진입하는 낮은 관세의 관문을 제공하고 있다. 말 그대로 중국의 개방 실험실인 셈이다.
물론 단기간에 '제2의 홍콩'이라는 타이틀을 얻긴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대규모 제조 공급망과 기업 생태계가 상대적으로 얇은 탓이다. 관광·유통업에 치우친 산업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서다.
또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은 있지만 금융·데이터 유통·미디어 등 핵심 서비스 분야의 시장 개방 수준은 싱가포르·홍콩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기술·데이터·안보 영역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서방 국가 기업들이 하이난이라는 지역 특례만 보고 단기간에 대규모 투자를 늘릴 지는 미지수다.

중국에 있는 한 해외 연구기관 관계자는 "하이난의 봉관 실험은 중국이 내수 둔화를 극복하고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던진 승부수"라며 "하이난이 국내용 쇼핑 특구를 넘어서 글로벌 자유무역항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제도적 투명성 확보, 규제 완화의 실질적 이행, 서비스 산업의 진정한 개방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이커우·완닝·링수이·싼야=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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