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칩플레이션(반도체 가격 급등)’이 인공지능(AI) 투자 수요를 위축시킬 것이라던 월가의 회의론이 속속 뒤집히고 있다. 메모리값 상승에도 기업들의 AI 투자는 오히려 앞당겨지고, 빅테크에 이어 네오클라우드 업체들도 자본지출을 더 늘리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다. 최근 기술주 급락을 야기한 수급 여건도 개선되면서 AI 인프라 투자의 수혜가 강한 한국 증시에 대한 기대 역시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이날 증시 강세를 견인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6.7%, 5.5% 급등했고, 반도체 기판과 소재·부품·장비, 전력기기 등 AI 인프라 관련주도 매수세가 강했다. 밤 사이 실적을 발표한 코어위브와 슈퍼마이크로가 시장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매출과 마진, 수주잔고를 공개하면서 올해 설비투자 전망을 상향한 것이 투심을 자극했다.
코어위브의 컨퍼런스콜은 최근 팽배했던 AI 반도체의 피크아웃(고점 통과) 우려를 잠식시켰다. 코어위브 경영진은 메모리를 비롯한 공급망 장기계약을 더 확대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객에게 필요한 용량을 제때 확보하기 위해 공급망을 공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면서 "원가 상승보다 컴퓨팅이 창출하는 가치 상승폭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체결한 계약의 마진은 전 분기 대비 5~10%포인트 높아졌다고 했다. AI 제품의 수익화가 확인되면서 고객사가 컴퓨팅 가격 상승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전문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일본 서버 부품업체인 타이요유덴 지분을 대폭 늘렸다는 소식도 삼성전기 등 반도체 부품주에 호재로 작용했다. 타이요유덴은 AI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고성능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만든다. 일본 증시에서 타이요유덴은 이날 7.5% 급등했다.
우드링은 지난 6월 말 '칩플레이션 때문에 기업들의 IT 지출이 꺾일 것'이라며 서버·스토리지 등 AI 인프라주에 대한 투자를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 판단이 틀렸었다"고 인정했다. AI가 컴퓨팅과 스토리지 수요를 계속 견인하는 가운데 메모리 가격 상승이 기업들의 구매를 억제하긴커녕 오히려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구매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FOMP)’ 때문이라면서 "추가적인 실적 상승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업종 내 선호도를 스토리지, 서버, PC 순으로 제시했다. 동시에 관련 기업들의 2026~2027년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를 시장 예상보다 9~12% 높게 잡고 HPE와 퓨어스토리지의 투자의견을 ‘비중확대’로 상향했다. 다만 2027년 실적 전망 상향이 정점을 찍는 시점부터는 다시 신중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증시는 AI 반도체와 인프라 투자의 '고베타 시장'인 만큼 이런 수급 변화에 더 민감하다. 지수 내 반도체 비중이 높고, 수출 역시 반도체 의존도가 큰 한국 시장은 글로벌 AI 투자심리에 따라 외국인 수급과 지수가 크게 출렁이는 구조다. AI 투자 심리가 개선됨에 따라 한국 증시 반등에 대한 기대도 특히 높아지는 이유다.

외국인 자금 회귀를 어렵게 했던 '롤러코스피'의 변동성도 완화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8% 넘게 하락해 올 5월 이후 처음으로 50대까지 떨어졌다. 6월 말 97선을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변동성이 상당 부분 진정된 셈이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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