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협상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이유 [더 라이프이스트-정인호의 통섭의 경영학]

입력 2026-08-24 07:00  

노사협상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이유 [더 라이프이스트-정인호의 통섭의 경영학]


최근 대한민국 산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삼성전자, 현대차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과 정보기술(IT)·제조 기업 중심으로 고조되고 있는 노사 간의 성과급 및 임금 갈등이다. "역대급 실적을 올렸으니 정당한 몫을 돌려달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와 "대내외적 불확실성과 미래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사측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선다.

이러한 풍경은 기업 실적이 좋아도 갈등이 발생하고, 실적이 나빠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협상은 장기화되고 파업 가능성이 거론되며, 직장인 커뮤니티와 온라인 공간에서는 노사 양측을 향한 비판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을 단순히 '돈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협상학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노사 갈등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양측 모두가 '고정된 파이의 함정(Fixed-pie Bias)'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고정된 파이의 함정이란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몫의 크기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다. 상대가 많이 가져가면 내가 반드시 손해를 보고, 내가 양보하면 곧 패배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제로섬(Zero-sum) 사고가 자리 잡는 순간 협상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힘겨루기가 된다.

그래서 협상은 처음부터 극단적인 요구안으로 시작된다. 양보는 패배처럼 느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논의의 대상은 숫자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 된다. 결국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채 협상은 결렬되거나, 한쪽이 상처를 감수하는 형태로 끝난다. 이것은 협상의 실패라기보다 협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의 실패다.

세계적인 협상학자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는 『Getting to Yes』에서 협상은 입장(Position)이 아니라 이해관계(Interest)를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입장은 성과급 인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실질소득 보전, 조직에 기여한 만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미래에 대한 안정감이 존재한다. 반대로 기업의 입장은 임금 인상 억제지만, 그 안에는 미래 투자 여력 확보와 비용의 예측 가능성, 글로벌 경쟁력 유지라는 현실적인 고민이 숨어 있다.

입장만 바라보면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이해관계를 들여다보면 새로운 협상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것이 협상학에서 말하는 '가치 창출(Value Creation)'이다. 실제로 이러한 접근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들도 적지 않다.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 폭스바겐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보다는 근로시간 단축과 고용 유지를 결합한 노사 합의를 선택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 부담을 감수했지만 숙련 인력을 유지했고, 시장이 회복되자 빠르게 생산을 정상화하며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도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는 경영 상황을 직원들과 투명하게 공유했고, 노조 역시 단기적인 임금 협상보다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함께 고민했다. 이러한 높은 신뢰는 미국 항공업계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경쟁력이 되었다.

협상의 고수는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만 고민하지 않는다. 파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원들이 원하는 것이 반드시 현금만은 아니다. 직무교육과 대학원 학비 지원, 리프레시 휴가, 유연근무제, 자녀 교육 지원, 장기 인센티브 등은 기업의 부담을 일정 부분 줄이면서도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협상 카드가 된다.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점을 활용하는 순간 협상의 공간은 훨씬 넓어진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조건부 계약(Contingent Contract)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영업이익이 목표를 달성하면 추가 성과급을 지급한다"와 같이 미래 성과와 보상을 연계하면 기업은 위험을 관리할 수 있고, 직원들은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전망을 갈등이 아니라 합의의 도구로 바꾸는 것이다.

또한 협상의 기준을 객관화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업계 평균 임금 인상률, 생산성 증가율,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업의 수익성 등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으면 감정적 대립보다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

결국 위대한 협상은 얼마나 많이 가져왔느냐 보다 협상이 끝난 뒤 얼마나 더 큰 가치와 신뢰를 함께 만들어 냈느냐로 평가받는다. 노사협상의 미래 역시 '고정된 파이를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파이를 함께 만드는 지혜'에 달려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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