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만난 금융은 돼지저금통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 심부름을 하고 나면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받은 동전은 늘 내 책상 위 돼지저금통으로 향했다. 동전이 ‘짤랑’ 떨어질 때마다 느끼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끔은 저금통을 흔들어보며 얼마나 모였는지 가늠해 보기도 했다. 흔들 때마다 들리는 묵직한 소리에 괜스레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돼지저금통이 가득 차는 날이면 엄마 손을 잡고 은행에 갔다. 창구에 동전을 쏟아놓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바라보던 순간은 어린 마음에도 무척 뿌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돼지저금통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도구가 아니었다. 돈의 가치와 저축의 기쁨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첫 번째 금융교실이었다.
얼마 전 시니어 금융교육에서 한 어르신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아들 결혼식 때 축의금을 받았는데, 몇몇 분은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셨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현금으로 찾는지 모르겠어요.”
평생 돈을 모으고, 쓰고, 저축하며 살아오신 분이다. 돈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다만 돈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카카오톡으로 받은 축의금을 계좌로 옮기고 현금으로 찾는 방법을 배운 뒤에야 어르신은 밝게 웃으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깨달았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만큼,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자주 쓰는 기능만 모아 큰 글자로 보여주는 ‘간편홈’ 모드 같은 작은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디지털 금융을 시작하는 용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반대로 요즘 아이들에게 돼지저금통 대신 익숙한 것은 QR코드다. 용돈은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받는다. 편의점에서 QR코드를 내밀어 결제하고, 분식점에서는 QR코드를 찍어 주문한다. 부모보다 앱 사용이 더 능숙하지만, 앱을 잘 쓰는 것과 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별개다. 돈의 가치와 저축의 의미, 신용의 중요성 등은 저절로 배워지지 않는다.
금융의 문턱은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은 글씨와 복잡한 화면이 장벽이 되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금융교육은 사용법을 넘어 자신의 돈을 이해하고 지키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어야 한다.
아이는 용돈을 받으며 돈의 가치를 배우고, 청소년은 소비와 신용에 대해 공부한다. 사회초년생은 월급을 관리하는 법을 익힌다. 부모가 되면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고, 나이가 들면 달라진 금융을 다시 학습한다. 결국 사람은 삶의 단계마다 새로운 금융을 배우며 살아간다.
금융은 학교에서 한 번 가르치고 끝내는 과목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 연마해야 하는 생활의 언어다. 돼지저금통은 QR로 바뀌었고, AI는 돈의 모습을 또 한 번 바꾸겠지만 금융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좋은 금융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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