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간병한 아들…아파트 지킬 길 열렸다

입력 2026-09-14 06:00   수정 2026-09-14 15:38

[상속 이슈]



일각에서 ‘효자’라는 단어에 부모에게 종속돼 독립하지 못한 성인이라는 은근한 비아냥을 담아 사용한다는 점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효(孝)는 정말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것일까. 우리 민법은 지난 3월 특별수익과 유류분 규정의 개정을 통해 그 답을 제시했다.

4녀 2남 중 아들 A씨는 오랜 기간 아버지와 동거하며 아픈 아버지를 간병했는데,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2020년경 세상을 떠나게 됐다. 고인은 생전 A씨에게 아파트 2채를 증여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 사후 약 54억 원 상당의 재산 전부를 A씨를 포함한 아들 둘에게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결과적으로 딸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전혀 상속받지 못하게 됐다.

고인의 뜻, 유류분의 벽에 막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남은 재산이 전부 두 아들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고인의 뜻은 외견상 분명해 보이는데, 현실에서 고인의 뜻은 유류분이라는 벽에 부딪혀 실현될 수 없었다. 비록 고인의 뜻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민법은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등 근친자에게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유류분)이 귀속되도록 법률상 보장하는 유류분 제도를 두고 있고, 상속 개시 후 실제 상속받은 재산이 유류분에 미치지 못하는 상속인은 그 부족분에 대하여 증여나 유증을 받은 사람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 A씨의 누이들은 2020년경 A씨와 다른 형제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A씨도 유류분이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았으나, 다만 한 가지 고인이 생전에 증여해준 아파트 2채가 마음에 걸렸다. 민법 제1112조에 따라 누이들의 유류분은 각 아버지 상속재산(기초재산)의 12분의 1로 그 비율은 변하지 않으니, 누이들의 정확한 유류분액은 결국 기초재산이 얼마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기초재산이 많을수록 누이들의 유류분액은 많아지고 역으로 A씨의 반환 금액은 늘어나게 되는데, 민법상 이 기초재산에는 아버지 사망 당시 재산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생전에 자녀들에게 증여한 재산도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공평을 기하기 위해 상속분의 선급으로 다루어 모두 포함된다. 문제는 누이들이 소를 제기할 당시 민법에 의하면, 설령 그 증여가 피상속인에 대한 특별한 부양과 기여의 보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기초재산에서 배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A씨가 생각하기에 그 아파트들은 본인이 장기간 아버지와 동거하며 간병비와 병원비를 지급하고 부양한 대가로 받은 것이지만, 누이들이 유류분을 주장하는 순간 상속재산을 미리 받은 것과 똑같이 취급된다. A씨 효도의 결과 기초재산이 늘어나 누이들의 유류분액이 높아지고, 본인은 누이들에게 반환할 금액만 늘어나게 됐으니, 효자의 결말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게 된 셈이다.


가족의 희생도 ‘기여’…
달라진 유류분 계산법


가족을 위해 더 많이 희생하고 기여한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이와 같은 모순은 유류분에 관한 민법 제1118조가 기여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2를 유류분에 준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었다.
즉, A씨와 같이 기여에 대한 보답으로 재산의 일부를 증여받은 기여상속인은, 비기여상속인인 누이들의 유류분반환청구에 대하여 기여의 대가로 받은 재산인 아파트를 기초재산에서 공제해달라는 취지의 항변을 할 수 없었고, 최악의 경우 피상속인의 재산이 기여의 대가로 증여한 재산뿐이라면, 기여상속인은 본인의 희생과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 재산의 일부를 속절없이 다른 상속인들에게 반환해야만 했던 것이다.

2024년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26년 3월 개정된 민법은 상당한 기간의 동거·간호 등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재산의 유지·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데 대한 보상으로 행해진 증여·유증을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쉽게 침범당하던 효를 비롯한 특별한 기여의 대가를 일종의 성역으로 지정해 다른 상속인들이 함부로 빼앗을 수 없도록 최소한의 경계를 설정해준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 A씨 사건에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소급효에 따라 개정 민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이유로, 구법을 전제로 아파트 2채를 기초재산에 산입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물론 그 아파트가 실제로 기여에 대한 보상이었는지는 환송심에서 다시 가려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A씨의 효도는 이제 유의미한 항변 수단이 된 것이다.

제아무리 가족이어도 누군가의 희생이 결코 당연시돼서는 안 되고,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게 진정한 평등이며, 특별한 기여에 대한 대가는 온전히 그 기여자에게 귀속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개정을 통해 민법은 특별한 부양과 기여의 대가만큼은 기여자에게 온전히 보전돼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고, 그것만으로도 효를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기에는 아직 이른 듯하다.

강선영 법무법인 웨이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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