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록과 뱅가드 그룹에 이어 전 세계 3위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자산운용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외 증시 활황으로 고수익 펀드로 수요가 몰린 가운데 피델리티운용은 증권사와 은행 등 주요 채널에서 판매액이 급감하는 ‘역성장’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피델리티운용의 펀드가 경쟁사 대비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높은 수수료를 고집한 것이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시장에서 피델리티운용의 존재감이 크게 줄어든 배경은 국내 증권사와 은행 등 주요 판매사 창구에서 일제히 피델리티운용의 펀드가 외면받기 시작한 결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보면 피델리티운용의 상위 10개 판매 채널에서 일제히 펀드 설정잔액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판매된 피델리티운용 펀드의 설정잔액은 작년 말 1조128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9020억원으로 급감했다. 6개월 만에 2260억원의 자금이 이탈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같은 기간 477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하나은행은 3630억원에서 3170억원으로 각각 770억원, 460억원이 빠져나갔다. 이 외에도 SC은행(-1260억원), 미래에셋증권(-610억원), 신한은행(-410억원), 우리은행(-260억원) 등도 피델리티운용의 펀드를 외면했다.

피델리티운용이 국내 시장에서 주력으로 판매하는 ‘피델리티글로벌테크놀로지증권자투자신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최근 3년간 피델리티 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의 수익률은 84.4%에 그친다. 반면 국내 시장에서 라이벌격인 프랭클린템플턴의 테크놀로지 펀드 수익률은 110.3%로 집계됐다. 한 펀드 운용역은 “피델리티 상품은 TSMC 비중은 높은 반면, 증시 상승을 주도한 엔비디아 포지션이 비어 있다”며 “반면 경쟁 테크 펀드는 엔비디아 등 핵심 AI 수혜주를 적극적으로 담는데, 이러한 주요 종목 편입 전략의 차이가 장기 수익률 격차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델리티운용의 또 다른 주력 상품인 ‘피델리티 아시아증권자투자신탁(주식)A’ 역시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펀(FUN) ETF에 따르면 해당 상품의 3년간 누적 수익률은 23.02%로, 비교 기준인 벤치마크(73.85%)보다 50.83%포인트 하회했다. 이처럼 피델리티운용의 부진한 운용 성과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 부담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피델리티운용의 총보수(운용·판매·수탁·일반)는 1.019%로 해외 운용사 전체 평균(0.808%)보다 높게 책정돼 있어 투자자들의 외면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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