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 스튜디오미르 대표(54·사진)는 ‘승부사’로 통한다. 2010년 창업한 후 처음 제작한 애니메이션 ‘코라의 전설’ 시즌1이 2012년 미국 파라마운트 산하 애니메이션 채널 ‘니켈로디언’에서 방영 첫 회 450만 명이 시청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니켈로디언 측은 “제작사가 아닌 채널의 자체 경쟁력 덕분”이라고 깎아내렸다. 유 대표는 미련 없이 후속작 제작을 포기했다. 자신의 경쟁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시즌2는 한 일본 제작사가 맡았고 품질 논란이 불거졌다. 팬들 사이에서 스튜디오미르의 복귀 요구가 커졌다. 니켈로디언 측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유 대표는 18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그때부터 미국에서 메인 프로덕션을 누가 맡느냐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미르라는 이름이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에 알려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애니메이션에 삽입되는 작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로 일을 시작해 작품 전체를 조율하는 연출과 감독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에게 전환점이 된 작품은 니켈로디언의 TV 애니메이션 ‘아바타: 아앙의 전설’이다. 당시 한국 제작사는 미국에서 보내온 지시서대로 그림을 그리는 하청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2005년 JM애니메이션으로 회사를 옮긴 유 대표는 총감독으로서 “한국 제작진에게 창작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2007년 2월 애니메이션 분야 최고상으로 불리는 제34회 미국 애니 어워즈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도 단순 하청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뢰는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단순 하청에서 벗어나 기획과 연출, 프로듀싱까지 영역을 넓히며 넷플릭스, 드림웍스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과 잇달아 협업했다. 2023년 코스닥 시장에도 상장했다. 애니메이션 ‘데빌 메이 크라이’ 시즌2는 지난 5월 넷플릭스 공개 첫 주 전세계 64개국 TV쇼 톱10에 진입하며 글로벌 흥행을 거뒀다.
유 대표는 미르의 경쟁력으로 유연성을 꼽았다. 그는 “우리는 특정 화풍이나 제작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파트너사가 원하는 스타일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번 돈은 다시 아티스트와 제작 환경에 투자하겠다는 각오다. 유 대표는 “변화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대응할 역량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다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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