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인맥 쌓기보다 워라밸 우선시

입력 2026-08-19 18:29   수정 2026-08-20 02:03

1990년대 중반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허리춤에 삐삐와 워크맨을 차고, 배꼽티와 힙합 바지를 입은 젊은이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인류’ 같던 이들이다. 신세대이자 ‘X세대’로 불린 1970년대생이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무한경쟁에 내몰렸다.

이들이 대학 졸업장을 쥐고 사회에 나설 때쯤 사상 초유의 고용 한파가 닥쳤다.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당하는 모습을 보며 평생직장 신화가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했다.

커리어의 꽃을 피워야 할 2010년대에도 운은 따르지 않았다.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하며 조직 규모가 커졌고, 이때 1960년대생이 임원으로 대거 발탁됐다.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따른 정년 연장까지 더해져 이들은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직급 파괴’ 바람도 불운이 됐다. 2019년 SK를 시작으로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이 줄줄이 직급을 축소했다. 부장, 상무, 전무를 거쳐 부사장으로 올라가며 검증받던 단계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70년대생은 그 사다리를 한 칸씩 밟아온 마지막 세대인데, 정작 사장 문턱에서 끊겼다.

산업 패러다임이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한 것도 입지를 좁게 했다. 70년대생은 제조업 전성기 끝물에 입사해 하드웨어 숙련과 현장 관리 중심으로 경력을 쌓았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1980·90년대생과 견줘 새 기술 습득이 더딜 수밖에 없다.

70년대생의 ‘파편화된 속성’도 한몫했다. 60년대생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거치며 집단행동과 조직화된 힘을 체화했다. 회사에 들어와서도 강력한 기수 문화와 학연·지연을 활용했고, 노조를 결성했다. 반면 연대 경험이 없고 각자도생이 내재화된 70년대생은 사내 정치, 집단행동과 거리를 뒀다. 대신 재테크와 자녀 양육 등 개인 삶을 우선시하는 실리주의를 택했다.

조직 내 고립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2024 우리금융 트렌드보고서’에 따르면 X세대의 86.7%가 직장 내 세대 차이를 체감한다고 답해 전 세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삶에 대한 만족도도 43.3%로 전 세대 중 가장 낮았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X세대는 개인주의화된 상태에서 사회에 진출해 조직 내 목소리를 키우는 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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