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벌어진 틈을 타 유가 담합으로 기름값을 인상하고 주유소에 '갑질'을 한 혐의로 기소된 정유 4사가 첫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류지미 판사는 20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과 임직원 4명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정유 4사는 가격 담합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검찰의 조사 과정이 워낙 짧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기소된 탓에 조사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밝히지 못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자영 주유소와의 '전량구매계약'과 관련한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서도 GS칼텍스 측은 "(주유소가) 계약 체결 후에 계약 갱신 거절 의사를 통해 계약을 벗어날 수 있었다"며 "카드 중단 조치 등 불이익은 체결된 계약에 따른 계약 점검 조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전량구매계약이 정유사가 자영 주유소에 통보하는 가격으로 한 회사에서 전량 구매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고 봤다. 이를 어길 시 보너스 카드 중단이나 손해배상 등 조치가 주유소에 취해지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방해 혐의를 받는 현대오일뱅크 법무실장과 GS칼텍스 국내 영업 부문장은 사실관계는 인정했지만 혐의는 부인했다. 메신저 대화방 등 기록을 삭제한 행위가 증거 인멸은 아니라는 취지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검찰이 입수하지 못한 증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GS칼텍스 측은 "관련 대화방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있고 대화방에는 담합과 관련된 내용도 없었다"고 했다.
구속된 채로 기소된 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 부서장 측은 이날 공판에서 "가격담합은 이틀에 걸쳤고 공소사실 또한 모호해 범죄 혐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전례가 없는 규모로 모든 정유사가 일제히 가격을 인상했다"며 "단순히 이틀만 가격담합을 했다는 건 무책임한 회피성 주장"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지난달 6일 유가 담합 등 혐의로 정유 4사와 HD현대오일뱅크 임직원 3명, GS칼텍스 임직원 1명을 기소했다. 현대오일뱅크 가격 결정부서 부서장은 구속 기소, 책임 매니저와 법무실장은 불구속으로 기소됐다. GS칼텍스 국내 영업 부문장도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미국·이란 전쟁 이후 유가를 올리기로 합의해 14조2000억원 규모의 담합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오른 유가를 추종하는 형식으로 담합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 4사의 담합으로 26조원 상당의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다음 달 22일 오전 9시 50분으로 정했다. 다만 증거의견서 제출 및 증인신문 계획 등 준비로 인해 오는 22일 예정된 재판은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된다. 피고인들의 출석 의무는 없다.
임민규 기자 jessim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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