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한 생활용품점 입구. 목욕 타월, 사우나 모자, 때비누가 쌓인 가판대 앞으로 2030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들은 제품을 집어 들고 "얼마예요?", "이건 뭐예요?"라고 물으며 목욕용품을 골랐다.
한때 '할머니 쇼핑템'으로 여겨졌던 목욕용품이 2030의 웰니스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대문 생활용품점의 소비자층도 역전됐다. 일부 상인은 주된 소비자층이 중장년층에서 2030으로 뒤집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남대문 목욕용품점을 접한 뒤 호기심에 찾아오는 젊은 손님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온라인에서 쉽게 제품을 구매하기보다 SNS에서 본 장소를 직접 찾아가 물건을 구경하고 발견하는 경험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이날 대학생 나모씨(20대·여성)은 남대문에서 목욕용품만 6만원어치를 구매했다. 나씨의 쇼핑가방에는 비누, 마사지볼, 기능성 장갑 때타월 등이 각각 2개씩 담겨 있었다. 나씨는 "인스타에서 사우나템 성지로 남대문이 나오는 걸 보고 왔다"며 "원래 집에서 반신욕하는 걸 좋아했다. 오니까 신기한 아이템이 많고, 특히 비누가 싸서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 남대문 생활용품점에서는 때타월뿐 아니라 사우나 방석, 인견 때타월, 기능성 장갑 등 다양한 목욕용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때타월도 1장에 1000원인 제품부터 7000원에 달하는 제품까지 가격대가 다양했다.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제품을 직접 비교하고 만져보며 고르는 재미가 있는 셈이다. 2030은 온라인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제품을 직접 구경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을 발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 위해 남대문을 찾았다.
발품을 팔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소비자도 있었다. 충청도에서 온 정모씨(39)와 경상도에서 온 김모씨(39)는 다른 생활용품점에서 때타월 등을 검은 봉지 가득히 샀다. 이들은 "친구 사이인데 다들 흩어져서 서울 여행 온 김에 왔다"며 "인스타그램에서 사우나템이 계속 나오길래 왔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동복만 봤을 것"이라고 했다.
2030 사이에서 남대문이 '사우나템 성지'로 떠오른 이유는 SNS 영향이 컸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는 '남대문 사우나 용품 성지', '남대문 목욕용품 추천', '남대문 나혼자 코스' 등 단순 소비 인증이 아닌 경험 인증 유형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날 기준 인스타그램 '남대문' 해시태그 게시물은 27만3000건을 넘었다. 특히 방송인 최화정이 유튜브 채널에서 남대문 쇼핑 콘텐츠를 올린 이후 관련 게시글이 확산하고 있다.
상인들 또한 SNS 영향력을 체감했다. SNS에서 사우나템 성지로 꼽히는 한 생활용품점 점주 A씨는 "최화정 유튜브 이후로 MZ 소비자가 늘었다. 지난달부터 확 달라졌다"며 "오히려 기존에 오던 중장년층보다 요새 MZ세대가 더 온다"고 말했다. '웰니스템 던전'으로 불리는 숭례문 수입상가에서 17년간 목욕용품을 판매한 60대 초반 민영숙씨는 "그간 장사하면서 삼성, 롯데 등 대기업이 이 근방에서 이사한 이후로는 처음"이라며 "지난해랑 또 다르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남대문이 활성화됐다. 원래는 어렸을 때부터 남대문을 찾아온 6070 소비자가 많았다"고 했다.

2030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남대문 상권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남대문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4년 2월 9.6%에서 2026년 2월 6.1%로 3.5%포인트(p) 하락했다.
남대문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최근 2030 사이에서 확산하는 '목적형 오프라인 쇼핑'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 종로구 동묘 일대에서 빈티지 상품을 구경하거나, 말랑이 완구거리, 볼펜·젤리슈즈 꾸미기 등을 위해 동대문 액세서리 부자재 상가를 찾는 것처럼 특정 품목을 찾아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SNS에서 특정 상품이나 장소를 발견한 뒤 '이걸 보러 가자'는 목적을 정해 직접 찾아가는 식이다.남대문에 대한 관심이 실제 SNS 언급량에서도 확인된다. 썸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남대문 관련 SNS 언급량은 올해 월 8000건을 넘어서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썸트렌드는 소셜 데이터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과거 의류와 잡화 등을 중심으로 찾던 남대문에 최근에는 그릇상가, 꽃시장, 약국투어 등 특정 목적을 가진 방문이 늘면서 관심사가 다층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남대문 시장처럼 큰 상권의 경우 SNS가 쇼핑 가이드나 나침판 역할을 한다. SNS 효과가 큰 이유"라며 "과거 남대문은 바가지 요금, 등 흥정 기술이 많지 않다면 선뜻 가기가 어려웠던 곳이었다면, 지금은 2030에게 레트로한 장소, 구경하는 재미 등으로 떠올랐다"고 짚었다. 이어 "특히 요즘은 무엇을 샀느냐보다 어디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쪽으로 소비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며 "동묘, 창신동, 동대문처럼 저비용으로 경험 소비를 할 수 있는 곳에 2030이 관심을 갖고 발걸음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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