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표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달 말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3개국 투어에 나선다. 수많은 클래식 스타를 배출한 한국이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유럽에서 악단의 기량을 입증할 시간이 다가왔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프리뷰 콘서트는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이어지는 유럽 투어와 동일한 레퍼토리로 꾸며졌다. 투어 직전 악단의 호흡을 최종 점검하고 국내 관객들에게 신고하는 출정 무대였다.
이날 연주된 두 작품은 구성 그 자체로 서울시향이 유럽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음악적 메시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1부의 ‘부상 처치사(The Wound-Dresser)’는 시인 월트 휘트먼이 미국 남북전쟁 당시 병사들을 치료하는 응급처치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에 작곡가 존 애덤스가 멜로디를 붙인 작품이다. ‘총알이 뚫은 어깨’ ‘복부에 난 상처’ 등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노랫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비극을 선명히 떠올리게 했다. 2부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갈등을 극복하고 연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대작. 5년째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그늘 아래 있는 유럽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한 구성이다.
공연 내용에선 관객 평가가 엇갈렸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협연한 ‘부상 처치사’는 괴르네의 묵직한 음색과 압도적인 표현력에 힘입어 대체로 호평받았다. 바이올린의 치밀하면서도 아스라한 떨림은 포탄이 떨어진 뒤 전장을 덮은 잿빛 연기를 그리듯 비극적 잔향을 남겼다.
‘합창’은 파격 그 자체였다.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들어 올린 뒤 연주가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58분. ‘합창’을 무대에 올린 국내외 악단의 평균 연주시간이 1시간10분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일 만큼 빠른 전개였다. 이 같은 속도감은 일부 관객에겐 압도적 몰입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빠른 템포가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바이올린 선율이 일부 뭉개지는 듯했고, 감정이 고조돼야 할 클라이맥스에선 음악에 진득하게 젖어들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겼다. 그럼에도 엄청난 속도를 이어가는 가운데 균형을 잃지 않는 서울시향의 탄탄한 연주력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라고 할 만했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가 담긴 하이라이트 4악장도 괴르네의 원어(독일어) 발성 덕에 메시지가 더 선명해졌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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