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강심장이 되고 있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누리기 위해 무시무시한 주가 변동성을 견뎌내고 있다. 하루는 천당, 하루는 지옥이다. 경제위기 때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한국 증시만 유독 심한 이유는 무엇일까.역설적이지만 증시의 안전판인 국민연금이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연초에 전례 없이 리밸런싱을 유예하면서 강세장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리밸런싱이란 중기자산배분을 유지하기 위해 자산을 사고파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주식을 팔지 않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면서 증시 수급 균형이 무너졌다. 해외 연기금만 기계적인 리밸런싱을 준수해 한국 주식을 ‘주구장창’ 팔았다. 그 주식을 고스란히 받아간 게 개미다. 고점 부근에서 거둬간 물량만 100조원이 훌쩍 넘는다. 우리 증시가 일본과 같이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극심한 변동성에 노출된 이유다. 후진적인 연기금 지배구조가 불러온 대참사다.
코스피지수가 8000대로 올라선 5월 28일, 국민연금은 전략적 자산배분(SAA)에서 국내주식 목표치를 14.9%에서 20.8%로 대폭 끌어올렸다. 단기 운용 재량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28.8%까지 높였다. 7월 초 코스피 9000선에서 74조원 규모의 국민연금 리밸런싱 매도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는 증권사 분석 보고서가 나오자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터무니없는 수치”라며 “언제부터 애널리스트가 점쟁이 노릇을 하게 됐는지 의아하다”고 질타했다.
수년째 우상향하는 일본 증시와 대비된다. 닛케이225지수는 2021년 2월 처음 30,000을 돌파한 뒤 올해 6월 70,000도 넘어섰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GPIF는 자국 주식을 25%만 가져간다는 원칙하에 주식을 줄곧 팔았어도 닛케이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위원회만 다섯 곳에 이르는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곳곳에서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국면에서 불거진 우리 증시의 진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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