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잘 팔리는 시대라면 증류소는 술만 제조하면 된다. 그러나 전반적인 주류 소비가 줄어드는 시대에는 무엇을 더 만들어야 할까. 이날 새로 문을 연 비지터센터를 둘러본 뒤 느낀 점은 증류소는 이제 술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술이 태어난 장소를 사람들이 찾아야 할 이유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와 일본의 증류소가 여행 목적지가 된 것처럼, 국내에서도 여러 양조장과 증류소가 방문객에게 제조 현장을 개방하며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과거 한국 술은 오랫동안 가문과 지역의 제법을 계승하는 전통을 중심에 뒀다. 그러나 최근 한국 증류주의 변화를 이끄는 생산자 중에는 물려받은 양조장 없이 처음부터 자신만의 기준을 세운 이들이 적지 않다. 문경 오미나라, 김창수 위스키, 기원 그리고 다농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술을 덜 마시는 대신 무엇으로, 누가, 왜 이곳에서 생산했는지를 살피는 소비자에게 분명한 제조 철학과 개선 과정을 보여주며 새 시장을 열어가는 것이다.다농바이오 비지터센터는 충주시농업기술센터 지원을 받아 조성됐다. 증류소를 개방하는 일은 단순 홍보를 넘어 술이 제조되는 과정을 관광과 교육, 구매 경험으로 확장하는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황동민 헤드블렌더가 직접 이끈 투어는 옹기에서 증류식 소주가 익어가는 공간에서 시작됐다. 쌀에 균을 배양해 입국(발효제)을 만드는 작업실과 발효조, 독일 코테사의 하이브리드 증류기가 놓인 증류실을 지나 두 곳의 숙성고로 이어졌다. 새 숙성고는 스토어와 연결돼 있어 방문객이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살펴본 뒤 자연스럽게 한 병을 고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농바이오는 충주시 농산물유통과의 중개를 통해 지역 농가와 쌀을 계약 재배한다. 한 번 생산에 사용하는 쌀은 약 600㎏이다. 이 중 400㎏으로 고두밥을 짓고, 나머지 200㎏에는 ‘순창 1호 토종 백국균’을 배양해 쌀 입국을 만든다. 초창기에는 외부에서 구입했지만 현재는 자체 입국만 사용한다.
발효조 안에서는 쌀 발효액인 ‘술덧’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1주일가량 발효한 술덧의 알코올 도수는 약 16%로, 단맛은 거의 남지 않는다. 완성된 술덧은 코테 하이브리드 증류기에서 증류된다. 증기가 정류판을 통과하며 응축과 기화를 반복해 향미 성분을 정교하게 분리한다. 상압 증류로 쌀 고유의 향과 질감을 끌어내면서도 원하는 풍미와 순도를 설계하는 방식이다.투어를 마친 뒤 알코올 도수 65도의 ‘가무치 스피릿’ 원액을 맛봤다. 가수와 숙성을 거치기 전이었음에도 높은 도수에 비해 자극이 적고 질감이 매끄러웠다. 쌀 향이 또렷해 그대로 마셔도 충분할 만큼 균형감이 훌륭했다.
비지터센터 개관은 증류소 완성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공개하고 방문객의 평가를 생산에 반영하겠다는 약속이다. 한 번의 인상적인 한정판을 넘어 다음 병도 신뢰할 수 있는 품질, 가격을 설명하는 서사, 생산지를 여행의 목적지로 만드는 경험이 함께 필요하다. 좋은 증류소는 문을 연 날이 아니라 그 문으로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정보연 Wave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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