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인정은 북한이 줄곧 요구한 핵협상 조건이다. 핵보유를 전제로 군축협상을 진행하며 제재 해제와 주권 인정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무력화하고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북한에 핵은 독재 세습체제를 지켜주는 방패이자 가장 효과적인 대남·대미 협상 수단이다. 북한이 김일성 시대부터 30여 년간 온갖 기만·교란 전술을 총동원해 핵을 지킨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장 수준은 1990년대 초 미국의 눈을 피해 도둑질하듯 핵무기를 개발하던 때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스케일과 체급 자체가 달라졌다.
우린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3년여간 이어진 비핵화 협상이 ‘하노이 노딜’로 허망하게 끝난 장면을 지켜봤다. 중동 전쟁 출구를 못 찾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반전을 꾀하기 위해 미·북 대화를 외교 성과로 포장하려고 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제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 미국의 미·북 대화 여건 조성 움직임에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북한은 어제 오후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무더기 발사하며 또다시 도발했다.
비핵화 조치가 빠진 대북 협상은 북한의 핵무장 완성을 위한 시간만 벌어줄 뿐이다.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한·미 동맹 간 비핵화 원칙을 확고히 세우고,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미·북 협상에서 우리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 안보는 현실이다. 선(先)평화론 등 정부의 단계적 대북 해법이 이상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는 순간 가짜 평화쇼의 막은 다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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