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에 체크인하는 순간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까. 체크인과 동시에 연극이 시작되고, 하룻밤을 자고 나서야 극장을 나서는 세계 최초의 숙박형 몰입 연극 ‘도마레루 엔게키(泊まれる演劇)’의 이야기다.

‘몰입형 연극’ 장르는 영국의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를 계기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연극은 고정된 객석 없이 호텔을 콘셉트로 조성된 공간을 관객이 직접 이동하며 관람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2021년 도쿄 비너스포트에 상설 극장 비너스 오브 도쿄(Venus of Tokyo)가 들어섰고, 2024년 이 부지에 세계 최초의 몰입형 시어터 테마파크 ‘이머시브 포트 도쿄’가 개장했다. 중세 유럽 거리를 재현한 대표적인 몰입형 연극 ‘더 셜록’(첫해 관객 15만 명)과 매진율 97%를 기록한 ‘에도 오이란 기담’이 이곳에서 선보였다. 안타깝게도 회사는 올해 폐업했으나 일본 엔터·관광 업계에서 ‘이머시브’(몰입형)를 핵심 키워드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마레루 엔게키 역시 슬립 노 모어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연극 무대가 되는 호텔에서 관객이 그대로 숙박하며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독창적 형식을 완성했다. 기획자는 교토와 오사카에서 부티크 호텔 ‘호텔 쉬’(HOTEL SHE,)를 운영해온 주식회사 수이세이(水星)로, 입사 3개월 차 프런트 직원이던 하나오카(花岡)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계절과 날씨에 좌우되지 않고 호텔에서 즐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호텔 자체를 여행의 목적지로 만드는 연극을 고안했다.
물론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2020년 첫 오프라인 공연은 코로나19로 무산될 뻔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스마트폰과 우편을 활용한 참여형 온라인 몰입극 ‘인유어룸’을 선보이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이후 오프라인 공연으로 확장해 현재까지 교토와 오사카 호텔 쉬 두 곳에서 연 2회 진행 중이다. 5년 차인 2024년 기준 누적 11개 작품, 380회 공연을 펼쳤고 관객은 1만 명을 돌파했다. 그 덕에 비수기에도 거의 만실을 유지해 숙박업의 고질적 과제인 성수기와 비수기 격차를 극복했다.

숙박형 연극이 다른 몰입형 공연과 구별되는 점은 시작과 끝의 경계가 없다는 데 있다. 공식 사이트에 등장인물 정보가 미리 공개돼 관객은 자신이 만나는 배우의 서사를 마음에 품은 채 호텔로 향한다. 체크인할 때 응대하는 사람은 배우가 연기하는 극 중 인물이고, 관객은 인사를 건네받는 순간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후 8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는 호텔 전 층을 무대로 삼는 연극이 펼쳐진다. 관객은 캐릭터의 안내를 받거나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건’을 목격한다. 막을 내리면 끝나는 일반 연극과 달리 밤 12시 후에도 극은 멈추지 않는다. 공연 속 캐릭터들은 로비에 남아 ‘애프터 바’ 형태로 관객과 대화를 이어간다. 하나오카는 “연극에 익숙한 관객도 이 도입부에 크게 놀란다”고 말했다.
객실 내부까지 경험은 이어진다. 벽에는 극의 세계관을 담은 포스터가 걸려 있고, 일부 객실에는 이야기의 핵심 열쇠가 되는 곡의 레코드판(LP)이 놓여 있다. 방으로 돌아온 관객은 턴테이블에 바늘을 얹으며 그날 밤의 서사를 한 번 더 곱씹는다. 이야기는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진다. 로비에서 조식을 즐기며 아침 라디오 방송으로 이야기의 후일담을 듣고, 낮 12시까지 여유로운 체크아웃으로 하룻밤의 특별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공간과 요리, 어메니티 모두 작품의 세계관으로 채워지고, 극 중 등장하는 메뉴를 맛보거나 오리지널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이 프로젝트만의 디테일이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숙박과 공연 업계 모두에 시사점이 있다. 공연업계는 대체로 배우 인지도에 기대어 관객을 모은다. 포스터만 봐도 이야기보다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반면 숙박형 연극은 기획 자체의 독창성과 종합 예술적인 매력으로 브랜드 팬층을 확보한 덕에 인지도보다 실력 위주로 캐스팅할 수 있게 됐다.
숙박업으로서는 재방문객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매년 같은 호텔을 재방문하는 손님은 드물지만 이곳은 시기마다 상연작이 바뀌어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재방문을 부르는 ‘극장형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올해 공연은 마무리됐지만 호평에 힘입어 2027년 초 다음 작품이 예정돼 있고 상연 기간도 길어질 예정이다. 한 작품이 구상에서 상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년 반. 각 작품은 무대가 되는 호텔 구조에 맞춰 각본과 미술을 짜기 때문에 일반 공연보다 제약이 있지만 실험은 계속된다. 올여름 상연된 ‘가라스마 도겐도(烏丸桃源堂)’는 다른 공간에서의 공연을 염두에 둔 베타판으로 제작됐다.
비수기의 빈방을 바라보던 한 호텔 직원의 질문 하나가 이제는 일본에서 문화를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대표 사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룻밤의 숙박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곳. 내년이면 교토와 오사카의 이 작은 호텔은 다시 한 번 극장으로 변신할 것이다. 이 특별한 하룻밤의 경험을 다음 시즌에 만나보길 바란다.
김현주 아트플롯 디렉터(Wave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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