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부동산 지형도를 재편하는 핵심 축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이 가시화하면서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바뀌고 있다. 한경닷컴은 노선별 개통 효과와 역세권·비역세권 간 가격 격차, 거래 흐름 변화를 데이터와 현장 취재로 짚는다. 철로를 따라 달라지는 집의 가치와 시장 재편의 실체를 검증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용산의 도시 구조를 형성한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철도다. 한강 수운과 육상 교통의 요충지였던 용산은 근대 철도가 들어서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철도 거점으로 성장했다. 1900년 한강철교가 개통되고 경인선과 경부선 등 철도망이 확장되면서 용산역의 위상도 높아졌다. 역 주변에는 기관차와 객차를 관리하기 위한 각종 철도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차량기지와 철도정비창 등이 넓은 부지를 차지했다.
현재 이곳에는 업무와 상업, 주거 기능을 결합한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조성되고 있다. 과거 열차와 철도시설이 차지했던 공간이 서울의 새로운 업무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100여 년 전 용산의 성장을 이끈 철도가 남긴 땅이 이제 용산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공간이 된 셈이다.
45만㎡ 철도 땅에 집 더 짓자…용산 곳곳서 정부·서울시 '충돌'
100여년 전 철도가 용산 땅의 쓰임새를 바꿨다면 지금은 그 철도가 남긴 땅을 비롯해 용산 일대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도 개발가치가 가장 높은 땅 가운데 하나인 용산을 두고 정부는 주택 공급을, 서울시는 국제업무 기능과 녹지 보존을 강조하면서다.갈등의 중심에는 용산역 뒤편 옛 철도정비창 부지가 있다. 이곳에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용산서울코어'가 들어선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일대를 국제업무와 업무복합, 업무지원 등 3개 구역으로 나눠 글로벌 기업과 업무·상업·주거시설 등을 한데 모으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기공식을 열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정부가 올해 1·29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으면서 변수가 생겼다. 정부는 서울 핵심 입지에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방침에 따라 용산국제업무지구에 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반면 서울시는 학교 등 기반시설과 국제업무지구라는 당초 개발 취지를 고려하면 8000가구 이상 공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철도 땅을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개발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인지, 주택난 해소를 위해 주거 기능을 더 확대할 것인지를 두고 양측의 셈법이 엇갈린 것이다.
용산을 둘러싼 충돌은 철도정비창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용산공원까지 새로운 주택 공급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4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용산어린이정원이라고 하면 좁은 개념이고 용산공원 전체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용산공원 약 300만㎡ 가운데 10%가량을 차지하는 용산어린이정원에 청년·신혼부부 대상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용산공원을 바라보는 논리는 명확하다. 서울 집값과 주거 불안을 잡으려면 수요가 몰리는 서울 핵심 입지에 공급해야 하고, 이를 위해 활용 가능한 국공유지와 유휴부지를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용산공원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경우 적용 용적률 등에 따라 3만~7만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반대하고 있다.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도심 녹지 가운데 하나인 용산공원을 훼손하면서까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해당 부지를 국가공원으로 조성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제 주택 공급을 위해서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업무지구와 가깝고 교통이 좋은 용산에 업무지구 대신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선택이 될 것"이라며 "주택 공급이 목적이면 용산뿐만 아니라 강동구에 있는 올림픽공원, 동작구에 있는 보라매공원 등 집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모두 활용해 주택을 지으면 그만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뉴욕 집값이 비싸다고 센트럴파크를 밀고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도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부연했다.
이를 단순히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로만 보기도 어렵다. 서울 핵심 지역의 주택 공급을 늘려 주거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 동시에 한 번 개발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대규모 도심 녹지와 국제업무 기능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서다.
해외에서는 개발과 보존을 결합한 사례도 있다. 일본 도쿄의 미드타운은 과거 군 관련 시설로 사용되던 약 7만8000㎡ 부지를 개발하면서 오피스와 호텔, 상업시설, 약 7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동시에 인접 공원과 연계해 약 4㏊의 녹지와 공개공지를 확보했다. 용산 역시 국제업무지구와 용산공원, 캠프킴 등 주변 부지를 하나의 권역으로 보고 개발과 주택 공급, 녹지 보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GTX-B까지 들어온다…용산 집값 전망은
용산의 철도는 여기서 또 한 번 달라진다. 현재 용산역에는 1호선과 경의중앙선, KTX 등이 지나고 인근 신용산역에서는 4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B가 추가된다.GTX-B는 인천 송도에서 서울 여의도와 용산, 서울역, 청량리를 거쳐 남양주 마석까지 이어지는 노선이다. 정부는 GTX-B가 2025년 8월 착공했으며 2031년 개통을 목표로 공정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산은 GTX-B 하나만으로 집값을 설명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해 용산공원과 한강로 일대 정비사업 등 여러 개발사업이 동시에 진행돼서다. GTX-B 역시 집값을 움직이는 단일 호재라기보다 용산을 서울의 업무·교통 중심지로 재편하는 여러 축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집값은 기존 부촌을 중심으로 주거 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용산구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곳은 한남동에 있는 ‘나인원한남’ 전용면적 273㎡로 지난 6월 18일 250억원에 거래됐다. 같은 동에 있는 ‘한남더힐’ 전용 235㎡도 지난 5월 130억원에 거래돼 나인원한남의 뒤를 이어다. 한남뉴타운 내 재개발 물건들도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상황이다.
용산구 내에서 상대적으로 평형대가 작은 곳들도 가격대가 높다. 보광동에 있는 ‘신동아1’ 전용 84㎡는 지난달 46억원에 손바뀜했고, 이촌동 ‘한강맨숀’ 전용 87㎡도 지난 6월 42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같은 동 ‘한가람’ 전용 84㎡ 역시 지난 4월 32억원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용산에서는 GTX-B 자체보다 국제업무지구가 장기적으로 집값에 미칠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다양한 철도망을 갖춘 만큼 추가적인 접근성 개선보다는 국제업무지구가 양질의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용산은 이미 KTX와 지하철, 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교통 요지여서 GTX-B가 추가하는 접근성 프리미엄 자체는 제한적"이라며 "반면 국제업무지구는 고용과 소득 기반을 새로 만드는 만큼 용산 가격의 또 다른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택 1만 가구 공급 역시 단기적으로 주변 집값을 끌어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김 수석위원은 "용산의 가치는 주택 수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에 있다"며 "4000가구가 늘어나는 것이 주거 희소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지만 주거 비중 확대로 핵심 업무 기능이 희석되면 장기적인 수요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제업무지구가 계획대로 완성된다면 용산은 강남의 대체재가 아니라 강남·여의도와 함께 서울 초고가 주거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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