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나면 월급 나중에 받겠다"…하이닉스 노조 '이례적 결단'

입력 2026-08-21 14:25   수정 2026-08-21 17:27

"적자 나면 월급 나중에 받겠다"…하이닉스 노조 '이례적 결단'


SK하이닉스 노사가 파업이나 외부 중재 없이 단체교섭을 잠정 타결하면서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성과급 갈등이 외부 개입이나 장기 대치로 번지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노사가 단기 보상과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스스로 해법을 내놓은 보기 드문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성과급 합의 1년 만의 재교섭
21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 20일 단체교섭안에 잠정 합의했다. 성과급 지급 방식에 합의한 지 1년 만의 재교섭이라 안팎에선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 단기 보상을 둘러싼 노사 갈등중 상당수는 법적 중재나 외부 개입 전에 타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 노사는 외부 중재나 제도에 기대지 않고 임금과 성과급, 위기 대응, 복지까지 아우르는 합의안(임금인상률 6.3%)을 도출해냈다.

눈길을 끄는 건 성과급 지급 방식을 손본 것이다. 당해 지급분은 현금 40%, 주식 40%로 나눠 지급하고 나머지는 1년 뒤 10%, 2년 뒤 10%씩 주식으로 이연 지급한다. 전체 성과급의 60%를 주식으로 받는 구조다. 당해 지급분 주식은 그 해 매도할 수 있지만 이연 지급분은 각각 1년, 2년이 지나야 팔 수 있다. 당장의 현금 보상과 회사의 장기 기업가치를 함께 고려한 셈이다.

주식 수는 연간 잠정 실적 공시일 종가, 성과급(PS) 현금 지급일 종가, 주식 지급일 종가 가운데 가장 낮은 값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주가 변동성을 감안해 구성원에게 유리한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이연 지급분은 지급 당해에 '주식 수'와 '이연 금액' 중 한 가지를 확정한다. 주식 지급 비중 60%는 기준선으로, 구성원이 원하면 최대 100%까지 높일 수 있다. 시행 첫해에는 자금 운용 계획 등 사유가 있는 구성원에 한해 현금 지급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적자 시 임금 3% 이내 이연

특히 이번 합의는 성과를 어떻게 나눌 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버틸지까지 노사가 함께 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노사 합의와 차별화된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노사는 적자가 발생하면 임금 3% 이내에서 지급을 미루기로 했다. 다만 고용안정 대책을 포함한 위기 극복 방안에 노사가 먼저 합의해야 시행할 수 있다. 경영이 정상화되면 회사는 이연한 임금을 즉시 회복하게끔 했다.

성과 배분에 한정됐던 교섭 의제가 '적자 국면 대응'으로 넓어진 셈이다. 회사가 적자를 내면 임금을 나중에 받겠다는 조건에 노조가 동의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고용 안정을 전제로 구성원이 일정 부분 부담을 나누고, 회사는 정상화 이후 이를 확실히 되돌려주는 구조인 셈이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이런 방식의 위기 대응을 이미 경험했다. 2000년대초 반도체 업황이 나빴을 때 자발적 무급휴직을 시행하는가 하면, 복도 전등을 솎아내고 식당 반찬을 줄이며 비용을 아낀 시기도 있었다. 2023년 다운턴 시기에는 임금 일부를 이연해 위기 극복에 먼저 투입했고, 회사는 흑자 전환을 확인한 뒤 약속대로 이를 지급했다. 당시의 경험이 이번 합의에서도 노사 간 신뢰의 밑바탕이 된 셈이다.

후공정 라인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지난 5월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에서 "회사가 어려울 때는 전기를 아끼려고 팹 내부 형광등을 군데군데 빼놓고 일한 적도 있었다"며 "그런 고비들을 다 넘겨왔기에 지금 세계에서 알아주는 회사가 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노사는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합의안에 담았다. 구성원이 성과급 일부를 기부하면 회사가 같은 금액을 출연하는 1대 1 매칭 그랜트 방식으로, 참여 여부는 구성원이 선택한다. 식단가 상향과 경조사 지원 프로그램 등 복지 안건에서도 합의안을 마련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무엇보다 노사가 이 모든 사안의 해결방안을 스스로 만들어 극복해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한 발 더 나아가 구성원과 주주가치, 미래 투자, 사회적 책임을 균형 있게 고려해 사회·구성원·노동조합·회사가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성숙한 노사 상생 모델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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