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2015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이 그림은 1970년대 초 송광사에서 도난당한 18세기 불화 ‘오불도’였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마티엘리는 반환을 결정했고, 오불도는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문화재청은 마티엘리의 보존 노력이 없었다면 작품이 온전히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으로 평가했다.
김수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의 신간 <수집된 한국>은 마티엘리처럼 한국 미술을 수집한 인물들을 추적하고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마티엘리를 비롯해 뉴욕 5번가에서 골동품상을 운영한 강금자,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 대규모 컬렉션을 기증한 로버트 무어 등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저자는 마티엘리의 사례가 당시 한국 미술의 해외 유통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마티엘리는 주한미군 부대 내에서 운영되던 미술 프로그램을 총괄했고, 한국에 머문 30여 년 동안 2000점에 이르는 미술품을 모았다. 저자는 “냉전기 한국에서 미군은 단순한 군사 조직이 아니라 문화 교류의 중요한 채널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보다 앞서 한국 유물을 수집한 외국인들도 있다. 구한말 이후 선교, 외교, 사업 등의 이유로 한반도를 방문한 사람들이다. 왕실에서 받은 미술품이나, 개인적으로 사들인 물건은 기증과 매각을 거쳐 미국의 박물관과 대학 컬렉션에 편입됐다. 스탠퍼드대가 유물 구입을 맡긴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도 이같은 경우에 속한다.
특별한 연고가 없었던 메리 버크도 한국 미술품을 적극 수집했다. 1960년대부터 일본 미술품을 모아 197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단독 전시를 열 정도로 이름난 컬렉터였지만 ‘수복자 병풍’ ‘포도도 병풍’ ‘연화도 병풍’ 등 병풍을 중심으로 한국 미술품도 적극 수집했다. 저자는 버크를 “주류 관심 밖에 있던 한국 미술을 자신의 컬렉션에 편입시켜 제도권 미술사에 정착시킨 경로 개척자”로 평가한다.
미국에서 한국 미술을 전문적으로 취급한 강금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는 1963년 미스유니버스대회 취재를 위해 미국에 갔다가 정착했다. 10년 만에 찾은 고국에서 신라 토기를 접한 것을 계기로 고미술에 뛰어들었고, 이후 수십년간 미국 주요 미술관에 한국 작품을 소개했다.
저자는 미술품과 문화재의 해외 이동과 관련한 윤리적 긴장도 짚는다. 다만 저자는 한쪽 면만 보진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동시에 이들은 철저한 상업 구조 속에서 아시아 예술의 위상을 국제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중개자이기도 했다”며 “이윤을 좇는 손끝에서 오히려 새로운 미적 가치가 태어났고, 그들의 안목이 만들어낸 시장은 오늘날 글로벌 미술사의 일부가 됐다”고 강조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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