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동자 같은 상품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가입하도록 무럭무럭 잘 키워야 합니다.”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라는 금융상품이 처음 나온 2016년, 금융당국의 언론 브리핑에서 나온 얘기다. 마이크를 잡은 인물은 ISA 태스크포스 단장을 맡아 준비 과정을 진두지휘한 김용범 당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현 청와대 정책실장). ISA가 옥(玉)처럼 귀중한 아이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금융위의 최초 구상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재정 형편에서 세제 당국의 큰 양보를 얻어냈고, 전향적인 혜택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세수 감소를 피할 수 없는 제도인 만큼 정부 내부의 이견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ISA가 ‘저축’ 위주였던 한국인의 재테크 무게중심을 ‘투자’로 옮기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렇게 탄생한 ISA, 출시 초창기에는 은행원 권유로 만든 깡통 계좌만 넘쳐나고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하지만 끈덕지게 제도 보완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자산 증식’이라는 본래 취지를 십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21년 주식 투자가 가능한 중개형 계좌가 추가된 것이 기폭제였다. 미처 채우지 못한 납입한도를 이월해주고, 만기 없이 계좌를 무기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조치도 함께 더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ISA 가입자는 10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재테크에 눈뜨게 되면 연금저축, 개인형퇴직연금(IRP)과 더불어 꼭 만드는 ‘3대 필수 절세 계좌’로 자리 잡았다. 세금을 0원까지 떨어뜨릴 수 있는 계좌가 갈수록 희귀해지는 데다 저율 과세, 손익 통산, 과세 이연까지 가능하니 투자자에게도 옥동자다. 당장 여유가 없더라도 일단 개설해두고, 돈이 생기면 부어가며 장기 투자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ISA에 들어간 돈은 예·적금을 29.1%, 국내 주식과 펀드 43.4%, 해외 펀드를 24.7% 담고 있다. ‘저축의 시대’를 ‘투자의 시대’로 전환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런 와중에 기존 ISA의 혜택을 줄이는 세제 개편안이 불쑥 튀어나왔으니, 개미들 여론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사실 “ISA 혜택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논란은 과거에도 틈틈이 제기돼 왔다. 이 주장도 나름의 근거를 갖추고 있긴 하다. 1인당 평균 가입금액이 710만원으로 연간 납입한도 2000만원에 한참 못 미치고, 전체 납입금액에서 30세 미만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여유가 있고 세금에 민감한 중장년·고소득자가 절세 효과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또 5년 전 ISA 혜택을 확대해준 전제 조건인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은 무산됐다. 애초부터 비과세인 국내 주식은 ISA에 넣으면 절세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해외 주식 모으기 좋은 계좌’로 부각되기도 한다.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에 사활을 건 정부로선 여러모로 손질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논리만으로 느닷없이 칼을 들이대도 괜찮을까. 대통령이 질타했다는 ‘정책 감수성’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ISA가 발휘하는 무형(無形)의 또 다른 효용을 과소평가했다는 느낌이 든다.
경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의 경험으로 볼 때 ISA는 언제나 열독률이 높은 인기 콘텐츠다. 절세 계좌 개설을 계기 삼아 진지하게 투자 공부를 시작하는 이가 많다. ISA는 비과세 혜택을 주는 조건으로 최소 3년 이상 돈이 묶인다. 족쇄 같은 불편한 장치지만 순기능도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그려보고 자산 배분, 복리 효과, 수익률 관리에 관심을 두게 한다. 초보가 빠지기 쉬운 나쁜 습관인 ‘사팔사팔’(샀다 팔았다)도 멀리할 수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잘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다.
ISA는 널리 알려진 대로 영국과 일본에서 성공한 제도를 가져온 것이다. 다만 한국의 ISA는 투자자가 지켜야 할 제약이 많고 구조가 복잡하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오히려 영국과 일본 수준으로 ‘더 통 큰’ 세제 혜택과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국민이 낯선 금융상품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ISA는 사람으로 치면 이제 열 살이다. 아직은 무럭무럭 더 키우는 데 집중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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