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가 ‘빨간색 브랜드’…교황의 105억짜리 라이카에는 없다 [강은영의 옥션 비하인드]

입력 2026-08-23 10:24  

초고가 ‘빨간색 브랜드’…교황의 105억짜리 라이카에는 없다 [강은영의 옥션 비하인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빨간 딱지’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사진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바로 떠오를 그 이름. 바로 독일의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Leica)입니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Leica가 새겨진 로고는 아이코닉한 상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데요.



이 감성을 위해서는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현재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카메라만 해도 대부분 천만원을 호가합니다.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빈티지 라이카 카메라는 수억, 수백억원에 거래되는데요.

이번에는 약 105억원에 팔린 라이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경매에 나온 빈티지 라이카입니다. 카메라의 주인은 무려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입니다. 교황이 직접 구매해 사용하던 것은 아니고, 라이카가 2024년 교황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입니다. 그의 자선 활동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 라이카의 선물이었죠.



경매 전 이 카메라의 최고 추정가는 7만 유로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경매에서는 무려 650만 유로(약 105억 원)에 거래되며, 최고 추정가의 약 93배에 달하는 기록을 세웠죠. 판매 금액은 전액 모두 교황의 자선 단체에 기부되며 생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이어갔습니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한 카메라인만큼, 외관부터 특별합니다. 보통 검은색 몸체를 지닌 라이카 카메라와 달리, 교황의 카메라는 새하얀 몸체를 지녔습니다. 바닥판과 필름을 넣는 뒷면 도어, 조작부 역시 흰색인데다가, 실버 크롬으로 마감한 점이 특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은 없지만, 카메라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카메라 곳곳에 바티칸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상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래시 커버에는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성 베드로의 열쇠(Keys of Peter)'를 각인했고, 바디 캡과 렌즈 캡에는 ‘바티칸 시국의 문장(Coat of Arms)’을 새겨넣었습니다.

카메라의 뒷면, 뷰파인더의 오른쪽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념을 담은 좌우명 ‘Miserando atque eligendo’도 쓰여 있습니다. 라틴어로 ‘자비로이 바라보시고 선택하시다’라는 뜻입니다. 교황이 되기 전 주교 시절부터 마음에 품어온 문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이 카메라의 희소성을 한층 더 높이는 디테일이 있습니다. 바로 카메라와 렌즈에 새겨진 시리얼 넘버 ‘5000000’입니다. 라이카는 특별한 일련번호를 저명한 인물을 위해 남겨두는 오랜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해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같은 역사적인 인물은 물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바스치앙 살가두와 같이 라이카와 각별한 인연의 사진가들에게 특별한 번호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경매에 등장한 카메라의 시리얼 넘버부터 확인하는 수집가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한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라이카의 상징인 빨간 로고인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유는 이 카메라의 베이스가 된 M-A에 있습니다. 2014년 출시된 M-A는 1954년 등장한 클래식 M의 디자인을 계승한 모델로, 의도적으로 빨간 로고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M 시리즈는 물론 라이카의 초기 모델에도 빨간 로고는 없었습니다. 이 로고가 등장한 것은 1976년이기 때문이죠. 그 이전에는 카메라 상판에 ‘Leica’와 제조사 ‘Ernst Leitz Wetzlar’ 등의 글자를 직접 새기는 방식이 주로 사용됐습니다.

이 특별한 카메라가 남긴 이야기는 경매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이은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 5월 바티칸에서 열린 알현에 라이카 CEO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초대했습니다. 경매를 통해 뜻깊은 자선 활동에 힘을 보탠 데 대한 감사의 자리였죠.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라이카의 상징은 없더라도, 교황의 카메라에 담긴 이야기는 그 어떤 빨간 로고보다 선명하게 라이카라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낙찰되었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와 함께 수십, 수백억 원이 오고 갑니다. 경매사의 망치가 내려치기까지, 한 점의 작품은 누구의 손을 거쳤고 어떤 시간을 품어왔을까요. 숫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가치와 그 뒤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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