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 갔다면 학자금 빚만 떠안고 실무 경험은 쌓지 못했을 겁니다"
영국인 루마이사 칸은 몇 년 전 옥스퍼드대 합격증을 받고도 입학을 포기했다. 대신 한 로펌의 '견습사원'으로 취직했다. 인공지능(AI)이 법률 시장을 빠르게 파고드는 상황에서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법조인이 되려면 이 길이 더 빠르다고 판단해서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처럼 대학 진학 대신 '화이트칼라 견습직'을 택하는 영국 청년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견습직은 보통 숙련공 밑에서 현장 경험을 쌓는 생산직의 영역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제는 컨설팅·금융·법률 등 주로 대졸자들이 진입하는 화이트칼라 직종에서도 견습 프로그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영국 학생고용주협회(ISE)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기업의 견습사원 채용은 8% 늘어났지만 대졸자 채용은 8% 줄었다.
청년들이 화이트칼라 견습직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AI의 취업시장 잠식 때문이다. 큰돈을 들여 대학을 나와도 AI 탓에 대졸 신입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며 대학 학위의 '가성비'가 떨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해서다.
영국 대학 4곳에 합격하고도 바클레이스은행 견습 프로그램을 택한 새뮤얼 랭킨은 "견습 과정은 AI 시대에도 비교적 안전한 경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순 학위만 따는 것보다 기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기술을 익혀 '대체 불가능한 인재'로 자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이 '대졸 임금 프리미엄'이 낮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영국의 대졸자가 비대졸자보다 추가로 버는 소득은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보다 낮았다.
기업들도 견습사원 채용을 늘리고 있다. 더 넓은 인재풀에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데다, 오랜 기간에 걸쳐 회사에 필요한 역량을 길러낼 수 있어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는 매년 컨설팅·세무·기술·회계 분야에서 1000개가 넘는 견습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런던에 본사를 둔 회계법인 그랜드손튼의 경우 2010년 영국 신입 교육생 가운데 견습사원 비중이 10%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견습사원 채용 인원이 대졸자 채용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그랜트손튼 측은 "견습 경로로 입사한 직원들의 커리어 전망과 승진 속도가 대졸자 직원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WSJ에 전했다.
김미리 기자 mirimiri@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