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건반 위 암사자로 불린 예술가 이야기 , 신간 <마르타 아르헤리치>

입력 2026-08-27 16:14   수정 2026-08-27 16:53

피아노 건반 위 암사자로 불린 예술가 이야기 , 신간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 뒤에선 극심한 외로움과 불안에 시달린 연주자, 그럼에도 삶의 순간마다 인간과 예술 앞에 뜨겁게 진실하고자 했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85). 그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삶의 진면목을 담은 평전이 나왔다. 2018년 한차례 출간됐던 평전이지만, 저자가 2025년 아르헤리치와 직접 나눈 심층 인터뷰를 새롭게 추가해 2026년 8월 다시금 한국 독자를 만난다.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황금기에 어린 시절부터 여든을 넘긴 오늘날까지 독보적인 연주를 이어온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처럼 뜨겁고 흥미진진하다. 음악 전문 기자이자 작가인 올리비에 벨라미는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취재, 아르헤리치 본인 및 주변인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르헨티나 암사자'의 내면을 복원해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부터 비엔나, 브뤼셀, 런던, 뉴욕으로 이어지는 아르헤리치의 음악 여정 속에서 프리드리히 굴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미샤 마이스키, 기돈 크레머 등 당대 최고 거장들과 나누었던 교류와 비화는 20세기 클래식 음악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지점은 건반 밖에서 보여준 그의 열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다. 지휘자 샤를 뒤트와와 불같은 사랑 끝에 결혼했지만, 그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 망설임 없이 결혼반지를 던져버렸던 일화는 아르헤리치라는 인물의 기질을 잘 보여준다.



화려한 조명 뒤 가려진 인간적 고뇌도 깊이 있게 조명된다. 연주회 직전까지 취소를 고민하고 실제로도 취소를 수차례 했을만큼 극심한 무대공포증과 고독에 시달렸던 그는, 혼자 있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밤새 지인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음식을 나누고 토론을 즐기는 '야행성 쉼터'를 자신의 거처에 마련하곤 했다.

책에는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을 타인을 돕는 데 사용했던 그의 선의도 기술돼 있다.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이보 포고렐리치가 탈락하자 "그는 천재"라며 심사위원직을 전격 사퇴했던 유명한 사건을 비롯해, 갈 곳 없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선뜻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콩쿠르나 음반사에 보증을 서며 후학들의 길을 열어준 일화들이 가득하다. 신간의 핵심인 '2025년 인터뷰'에는 여든을 넘긴 거장이 돌아보는 인생과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겼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 불꽃처럼 부딪치며 갈라섰던 샤를 뒤트와와의 관계다. 비록 부부로서의 인연은 끝났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적 깊이를 존중하는 둘도 없는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로 평생의 여정을 함께 이어왔다. 두 거장의 특별한 호흡은 조만간 한국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오는 11월 한국에서 한 무대에 선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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