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좋아하는 마음에도 나이가 있다. 10대에는 명품 지갑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이나 구찌의 GG 패턴처럼 한눈에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제품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친구들이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이 시기의 명품은 ‘나를 표현하는 물건’이라기보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에 가깝다. 브랜드의 역사나 제품의 가치보다 ‘명품을 갖고 있다’는 경험과 소유의 기쁨이 더 중요하다.미국에서 딸을 키우던 시절,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내가 살던 곳은 미시간주 로체스터(Rochester)라는 크지 않은 도시였다. 학군이 좋고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지만, 명품을 소비하는 방식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미국인들은 클래식하고 편안한 옷차림을 선호했고, 명품 역시 과시하기보다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듯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루이비통의 작은 숄더백이나 코치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부모가 사주기도 했고, 조부모가 손주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다. ‘어린아이에게 명품을 선물한다고?' 당시의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은 물건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하는 것 역시 그들이 명품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20대가 되면 관심은 지갑에서 가방으로 옮겨간다. 부모님을 졸라서든, 아르바이트를 해서든, 혹은 할부를 이용해서든 명품 가방 하나쯤은 꼭 갖고 싶어진다.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셀린느 같은 브랜드의 가방이 일상 속 첫 명품으로 자리 잡는다. 프라다의 나일론 백, 셀린느의 트리오페,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처럼 브랜드를 상징하는 디자인은 가방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다. 이때까지는 ‘사용’보다 ‘소유’ 자체가 더 중요한 시기다.
30대가 되면 경제력이 생기면서 명품을 고르는 데도 나름의 기준이 생긴다. 샤넬의 클래식 플랩백, 디올의 레이디 디올, 에르메스의 버킨과 켈리처럼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제품에 눈길이 간다. 한편 미우미우나 프라다처럼 젊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브랜드도 새로운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이때부터 명품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 자신의 이미지와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어떤 가방을 들고 어떤 시계를 차는지가 곧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40대가 되면 명품의 영역이 넓어진다. 가방에서 신발과 의류, 주얼리, 시계로 관심이 이동한다. 샤넬과 디올의 의류와 슈즈, 에르메스의 스카프와 가죽제품, 로로피아나와 막스마라처럼 소재와 품질을 강조하는 브랜드에도 눈길이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방보다 주얼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까르띠에의 러브 컬렉션, 반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 라인, 불가리의 세르펜티처럼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아이코닉 주얼리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 언어가 된다.
40대 후반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 에르메스의 버킨이나 켈리처럼 쉽게 가질 수 없는 제품을 위해 오랜 시간 브랜드와 관계를 쌓기도 하고, 특정 브랜드의 컬렉션을 하나씩 완성해 가기도 한다. 명품을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수집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50대가 되면 소비의 중심은 다시 한번 바뀐다. 자녀 교육비를 비롯한 경제적 부담이 줄고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서 가방보다 주얼리와 시계에 눈길이 간다.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티파니앤코 같은 주얼리 하우스의 아이코닉 컬렉션은 물론 부쉐론이나 쇼메처럼 브랜드의 역사와 디자인 철학이 분명한 주얼리에도 관심이 깊어진다.
이 시기에는 남들이 많이 가진 제품보다 희소성과 이야기가 있는 제품을 찾게 된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특별한 컬러 스톤, 독창적인 디자인처럼 ‘나만의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 주얼리에 더 큰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기준 자체가 달라진다. 무겁고 화려한 가방보다 가볍고 편한 가방에 손이 간다. 신발도 브랜드나 디자인보다 발이 편한지가 중요해진다. 옷도 커다란 로고보다 소재와 착용감을 먼저 보게 된다. 로로피아나나 브루넬로 쿠치넬리처럼 눈에 띄는 로고 대신 좋은 소재와 완성도를 앞세운 브랜드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이유다.
주얼리를 보는 눈도 달라진다. 크고 화려한 것보다 오랫동안 착용할 수 있고 어떤 옷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찾는다. 매일 착용할 수 있는 작은 다이아몬드 귀걸이, 심플한 골드 링, 의미를 담은 펜던트처럼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것에 마음이 간다.
결국 명품의 끝에는 화려함보다 편안함과 본질이 남는다. 많은 명품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로고보다 소재를 보고, 유행보다 디자인의 완성도를 본다. 비싼 가격표보다 얼마나 자주 사용할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생각한다.
명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오히려 ‘명품 티가 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이켜 보면 명품을 향한 우리의 욕망은 대부분 비교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가지고 있으니 나도 갖고 싶고,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10대에는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20대에는 성공한 나를 보여주고 싶어서, 30~40대에는 사회적 위치와 취향을 표현하기 위해 명품을 찾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마음도 조금씩 달라진다. ‘남들이 알아봐 주는 명품’에서 ‘내가 좋아하는 명품’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내 삶에 필요한 명품’으로. 명품은 나를 빛내는 도구일 뿐, 나를 완성하는 존재는 아니다. 진정한 품격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누리느냐에서 나온다.

그래서 명품을 오랫동안 사랑해 온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 명품이 있다면 아끼지 말고 사용하자. 아무리 비싼 가방이라도 옷장과 진열장 속에만 머물러 있다면 결국 하나의 물건일 뿐이다. 매일 들고 나가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명품에도 나의 시간이 쌓인다.
오늘 가장 아끼는 가방을 들고, 가장 좋아하는 주얼리를 착용하고 집을 나서 보자. 명품을 가장 잘 소유하는 사람은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명품을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품위 있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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