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끄럽고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다면, 더 호젓한 바다를 만나고 싶다면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달려보자. 강원 속초를 지나 동해안 최북단에 다다르면 고성이 나온다. 인근 양양과 속초에 비해 고성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도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점이 고성의 가장 큰 매력이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핫플’을 찾기는 어렵지만 느슨하게 이어지는 풍경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삶의 여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7번 국도의 큰길에서 벗어나 좁은 해변길로 접어들면 백사장 사이로 드문드문 솟은 갯바위와 기분 좋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야진 해변은 사람이 붐비지 않아 바다 그 자체를 편안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요즘 유명 해변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적당히 비어 있는 풍경’이 반갑다.
해안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다를 품은 정자, 청간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성 8경 중 하나인 이곳은 기암절벽 위에 들어선 팔작지붕 정자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동해를 굽어보는 맛이 각별하다. 이어 천학정과 능파대를 지나 거진에서 화진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기암과 송림, 작은 포구와 해변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다채로운 동해의 얼굴을 보여준다.
바다를 충분히 만끽했다면 핸들을 틀어 내륙 깊숙이 진입해 보자. 호젓한 산길을 지나면 숨겨진 고즈넉한 한옥마을이 나타난다. 송지호 인근의 왕곡마을은 고려 말~조선 초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형성된 600년 역사의 전통 마을이다. 작은백촌집, 큰백촌집, 큰상나말집, 성천집, 석문집 등 단정한 북방식 전통 한옥의 형태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오래된 골목 사이 진분홍색 배롱나무꽃이 고개를 내민 낮은 돌담 너머로는 정겨운 주민들의 삶의 흔적이 묻어난다. 마을을 관통하는 개천을 따라 남쪽으로 거닐다 보면 오랜 세월을 견딘 정미소 하나가 보인다. 영화 ‘동주’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길을 걷다가 지칠 땐 고성의 옛집을 개조한 소박한 카페나 작은 서점에 들러 쉬어가는 것도 좋다. 고성에는 뼈대를 살린 예쁜 옛집이 많이 남아 있어 보물찾기하듯 취향에 맞는 공간을 찾는 소소한 재미가 쏠쏠하다.
고성=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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