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으라면서 집 짓는 돈을 담뱃세로"…1.5조 세금 전환 논란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입력 2026-09-02 06:00   수정 2026-09-02 06:11

"끊으라면서 집 짓는 돈을 담뱃세로"…1.5조 세금 전환 논란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정부가 내년부터 교육 재원으로 쓰던 연간 1조5000억원 규모의 담뱃세를 주거복지 재원으로 돌린다. 올해 말 담배소비세분 지방교육세를 없애는 대신 같은 세율의 ‘지방주거복지세’를 신설하면서다. 흡연자가 내는 세금은 그대로지만 사용처만 학교에서 주택 공급으로 바뀌는 셈이다.

2일 담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확정한 ‘2026년 지방세제 개편안’에 올해 말 담배소비세분 지방교육세가 폐지되고 내년부터 지방주거복지세가 신설된다. 지금은 담배소비세의 43.99%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방교육세로 걷는다. 지난해 기준 약 1조5000억원이다.

세율은 똑같다. 담배 제조업자와 수입판매업자가 담배소비세의 43.99%를 내고 담 배가 팔린 지역에 세수가 귀속되는 구조도 유지된다. 행안부는 이를 지방정부의 공공주택 공급과 주민 주거여건 개선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에게 추가되는 세 부담도, 담뱃값 변화도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일몰'된다던 담뱃세, 간판만 바꿔 다시 등장

논란이 되는 것은 세금의 ‘환생’ 방식이다. 담배소비세분 지방교육세는 애초 한시적인 세금이었다. 일몰 때마다 교육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수명이 연장돼 왔다. 2024년 말 지방세법을 고칠 때는 아예 2027년부터 영구 종료한다는 전제를 달아 2025~2026년 2년만 연장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약속대로 지방교육세를 없앤다고 강조한다.

형식적으로는 지방교육세는 없어진다. 그런데 기존 세액과 똑같은 지방주거복지세가 그 자리를 그대로 차지한다.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올해까지 미래세대의 교육을 위해 내던 돈을 내년부터 주거복지를 위해 내는 것뿐이다.
목적세의 명분을 둘러싼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특정 정책을 위한 재원이 필요해 목적세를 걷었다가 해당 세금의 존속 근거가 사라지자 다른 재정 수요에 맞춰 이름을 바꿔 계속 걷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입법예고된 지방세법 개정안에도 담배분 지방교육세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동시에 지방주거복지세의 목적과 세율 등을 새로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교육계로서는 날벼락이다. 그동안 학교로 향했던 연간 1조5000억원이 통째로 지방정부의 주거 재원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은 교육재정 감소를 우려해 지방교육세 연장을 요구해왔다. 경기도교육청만 해도 연간 약 4000억원의 세입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주택 공급 역시 당장 돈이 필요한 분야다. 청년과 취약계층의 주거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이번 개편안에는 40세 미만 청년의 생애최초 주택 취득세 감면 한도를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높이고 주거용 오피스텔까지 대상으로 넓히는 방안도 담겼다.

담배는 줄이라면서…주거재원은 담배 판매에 연동

문제는 왜 하필 그 안정적인 재원이 담배여야 하느냐는 점이다. 담뱃세에는 이미 여러 정책 목적이 얹혀 있다.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뿐 아니라 개별소비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이 붙는다.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의 45%는 소방·안전시설 확충 등에 쓰이는 소방안전교부세 재원이기도 하다. 올해 소방안전교부세만 1조503억원이다.

담배 한 갑이 교육과 국민건강, 소방에 이어 이제 주택 공급까지 떠받치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모순은 정부의 금연 정책과 충돌한다는 데 있다. 정부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뱃값 인상과 경고그림, 금연구역 확대, 광고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도입해왔다. 지난 4월부터는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았던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까지 법적 ‘담배’에 포함해 건강경고 표시와 광고 제한, 금연구역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정책이 성공하면 담배 소비는 줄어야 한다. 그런데 담배가 덜 팔릴수록 지방정부의 주거복지 재원도 줄어든다. 금연 정책으로 없애야 할 소비 행위를 주택 공급을 위한 안정적 세원으로 삼는 역설적인 구조다.
"규제는 늘고 가격은 그대로"…담배업계도 불만


담배업계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정부가 담배산업을 사실상 가장 강하게 규제되는 소비재 산업 가운데 하나로 관리하면서도 담배 판매에서 나오는 세수에는 갈수록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어서다.

업계가 특히 지적하는 대목은 가격이다. 2015년 정부가 담뱃세를 대폭 올리면서 2500원 안팎이던 주요 궐련 가격은 4500원 수준으로 뛰었다. 이후 일부 비주력 제품이나 특정 외국계 브랜드가 가격을 조정한 사례는 있지만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로스만스 등 주요 업체의 대표 궐련 제품은 10년 넘게 4500원 수준에 사실상 고착돼 있다. 지난해에도 업계에서는 원가와 물류비 등을 이유로 가격 조정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주력 시장의 4500원 가격대는 유지됐다.

담배회사가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담배는 가격 자체가 정책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품이다. 물가와 서민 부담 논란에 민감한 데다 업체 한 곳이 먼저 가격을 올리면 점유율을 경쟁사에 빼앗길 가능성도 크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인건비와 원재료비, 물류비가 올라가도 다른 소비재처럼 손쉽게 가격표를 바꾸기 어렵다.



게다가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서 세금과 각종 부담금이 차지하는 금액은 3300원 안팎이다. 업체에는 광고·판촉과 제품 표시, 판매 방식 등에 각종 규제를 적용하면서 정작 판매될 때마다 발생하는 세수는 정부와 지방정부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업계에서 “규제는 계속 늘어나는데 담배에서 걷는 세금의 쓰임새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내년부터 흡연자는 담배 한 갑을 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지역의 집 짓는 돈을 보태게 된다. 정부는 담배를 끊으라고 한다. 그래도 피운다면, 이번에는 집을 짓는 데 세금을 내게 된다. 담뱃세의 기묘한 변신인 셈이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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