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4번 바꿨다"…23년 차 편의점 베테랑의 생존법 [권용훈의 직업불만족(族)]

입력 2026-09-06 06:00   수정 2026-09-06 07:30

"간판만 4번 바꿨다"…23년 차 편의점 베테랑의 생존법 [권용훈의 직업불만족(族)]



“요즘은 제가 모르는 상품도 일단 들여놓습니다. 안 팔리면 재고가 되지만, 안 들여놓으면 손님 자체를 놓칠 수 있으니까요.”

2000년대 초반까지 편의점의 ‘효자 상품’은 담배였다. 담배를 사러 들어온 손님이 음료나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나가는 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출근길엔 즉석커피와 삼각김밥을 찾고, 퇴근길엔 과일과 두부를 산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SNS에서 본 신상 디저트를 찾아 편의점을 여러 곳 돌아다니는 2030 젊은 소비자도 생겼다. 이제 화장품과 정육까지 편의점 매대에 자리 잡았다.

이 변화를 한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이 있다. 경기 수원시청 인근에서 23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철 씨(49·사진)다. 바이더웨이로 장사를 시작한 그는 개인편의점과 다른 편의점 브랜드를 거쳐 올해 1월 이마트24 ‘수원랜드마크점’으로 다시 간판을 바꿨다. 가게가 있는 자리는 23년째 그대로지만 그 안에서 파는 물건과 찾아오는 손님, 장사하는 방법은 몇 번이나 뒤집혔다.

편의점 사장에게 필요한 능력도 달라졌다. 물건을 채워 놓고 계산대만 지킨다고 장사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떤 상품이 뜨는지 남들보다 빨리 읽고, 적정 물량을 들여놓는 감각이 중요하다. 유행을 좇아 너무 많이 발주하면 재고가 쌓이고, 반대로 소극적으로 주문했다가 품절되면 손님은 기다려주지 않고 다른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결국 상품을 보는 눈과 발주 감각이 편의점의 매출을 좌우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담배와 과자를 팔던 동네 구멍가게의 진화형이었던 편의점은 이제 커피전문점, 식당, 마트, 화장품점은 물론 온라인 쇼핑과도 경쟁한다. 신씨가 23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간판을 여러 차례 바꿔 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씨는 “예전에는 찾는 물건이 없으면 손님들이 ‘사장님, 이거 없어요?’라고 물어보기라도 했다”며 “요즘 젊은 고객들은 원하는 상품이 없으면 그냥 나가버린다. 결국 손님이 뭘 찾을지 사장이 먼저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Q. 한 자리에서 23년이면 웬만한 직장인보다 오래 다닌 셈이네요.
맞아요. 처음엔 바이더웨이로 시작했습니다. 개인편의점도 해봤고 다른 브랜드도 운영했고요. 올해 1월 이마트24 수원랜드마크점으로 다시 간판을 바꿨습니다. 간판은 몇 번 바뀌었지만 저는 23년째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제 20대부터 지금까지를 거의 이 가게에서 보낸 셈이죠.

Q. 그동안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사라진 풍경은 뭡니까.
‘담배 한 갑 주세요’ 하고 들어오는 손님이 편의점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죠. 예전에는 담배가 잘 팔리면 장사가 어느 정도 됐습니다. 음료 하나, 과자 하나 같이 사가는 식이었고요.

요즘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침에는 커피와 김밥을 사고, 점심에는 도시락을 먹고, 퇴근하면서 과일이나 두부를 사갑니다. SNS에서 본 디저트를 딱 집어서 찾는 젊은 손님도 많고요. 예전에는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편의점을 찾아오는 이유 자체가 여러 개가 됐습니다.

Q. 팔 수 있는 물건이 많아졌으니 장사도 쉬워진 것 아닙니까.
반대죠. 팔 수 있는 건 많아졌는데 경쟁 상대도 그만큼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길 건너 편의점만 보면 됐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 배달, 마트, 커피전문점하고도 경쟁해야 합니다. 생수나 휴지처럼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물건만 갖다 놓고 기다리면 굳이 우리 매장까지 올 이유가 없어요.
요즘 편의점은 ‘뭘 파느냐’보다 ‘왜 이 매장에 와야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Q. 23년차 사장도 유행을 공부합니까.
매일 해야죠. 오히려 오래했다고 감만 믿으면 안 됩니다. 제가 처음 보는 상품도 많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왜 이걸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는 제품도 있고요. 그래도 제가 모른다고 발주를 안 해버리면 그 상품이 잘 팔리는지조차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신상품은 어느 정도 물량을 넣어보고 반응을 봅니다. 판매 속도가 빠르면 늘리고, 아니면 줄이고요.

Q. 많이 넣었다가 안 팔리면요.
그게 제일 무섭죠.(웃음) 신상품을 안 넣으면 유행을 놓치고, 많이 넣으면 재고가 됩니다. 특히 식품은 유통기한이 있으니까 그대로 손실이 될 수 있고요. 편의점 사장은 매일 작은 베팅을 하는 셈입니다. ‘이게 오늘 몇 개 팔릴까’를 계속 판단해야 하니까요. 23년을 해도 그건 완벽하게 맞힐 수 없습니다.

Q. 결국 발주가 편의점 사장의 실력입니까.
굉장히 중요하죠. 예전에는 물건을 잘 채우고 친절하게 계산하는 게 중요했다면 지금은 상품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품이 뜰지 보고, 우리 상권에서 얼마나 팔릴지 예상하고, 적정 수량을 맞춰야 하니까요. 너무 적게 주문하면 품절되고, 너무 많이 주문하면 재고가 남습니다. 그 사이를 맞추는 게 장사죠.

Q. 손님도 예전보다 냉정해졌다고요.
예전에는 원하는 상품이 안 보이면 “사장님, 이거 없어요?”라고 물어봤어요. 요즘은 그냥 나갑니다. 말도 안 하고 옆 편의점으로 가버려요. 특히 젊은 고객들은 SNS에서 이미 살 물건을 정하고 옵니다. 편의점에 와서 뭘 살지 고르는 게 아니라 ‘그 상품’을 사러 오는 겁니다. 그러니 손님보다 사장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요즘 뭐가 뜨는지, 사람들이 뭘 찾는지요.

Q. 그래서 올해 또 간판을 바꾼 겁니까.
20년 넘게 하다 보니까 ‘지금 방식으로 계속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마트24 마곡프리미엄점을 보러 갔는데 제가 오랫동안 봐온 편의점하고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상품 배치나 공간을 쓰는 방식도 달랐고요. 그때 ‘앞으로 편의점은 물건만 쌓아놓는 공간으로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 편의점 경영에서 인테리어가 그렇게 중요한가.
한 번 들어오게 하는 데는 중요하죠. 그런데 공간이 예쁘다고 두 번, 세 번 오는 건 아닙니다. 다시 오게 만드는 건 결국 상품과 서비스입니다. 찾는 상품이 있어야 하고 행사나 할인 혜택도 좋아야 합니다. 저는 ‘공간은 한 번 오게 하고 상품은 다시 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브랜드를 바꾸고 실제 고객층도 달라졌습니까.
여성 고객이 확실히 늘었습니다. 제가 같은 자리에서 워낙 오래 장사했으니까 어떤 손님이 오는지 대략 감이 있잖아요. 브랜드 전환 이후에는 디저트나 커피, 화장품을 찾는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화장품 판매도 같은 상권 내 이마트24 점포 가운데 상위권이라고 들었습니다.

Q. 매출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브랜드 전환 이후 하루 평균 매출은 이전보다 30% 이상 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출이 늘었다는 것보다 무엇이 팔리는지가 더 흥미롭습니다. 일반적인 편의점은 담배 매출 비중이 35~40% 정도인데 저희 점포는 26% 수준입니다. 대신 음료나 간편식, 디저트 같은 일반 상품 비중이 높습니다. 사장 입장에서는 담배보다 이런 상품이 많이 팔리는 편이 수익성 측면에서도 낫고요.

Q. 이제 편의점에서 고기와 두부도 잘 팔립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오래 장사했지만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정육이나 두부를 이렇게 많이 찾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오피스텔이 많다 보니까 혼자 사는 고객들이 퇴근하면서 조금씩 사갑니다. 과일이나 채소, 두부·콩나물, 정육 같은 장보기 상품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큰 장은 마트에서 봤다면 지금은 ‘오늘 저녁 먹을 만큼’만 편의점에서 사가는 겁니다.

Q. 편의점 사장은 이제 계산만 잘해서는 안 되겠네요.
계산은 기본이고요.(웃음) 상품 트렌드도 봐야 하고 발주도 해야 하고 재고도 관리해야 합니다. 행사도 알아야 하고 카드 할인이나 통신사 할인도 챙겨야 합니다. 저는 손님이 들어오면 먼저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라고 묻는 편입니다. 받을 수 있는 할인이 있으면 알려드리고요. 편의점이 워낙 많으니까 사소한 경험 하나가 다음에 우리 매장을 다시 올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봅니다.

Q. 웬만한 편의점 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까.
익숙해져도 해결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사람 문제죠.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못 나온다고 하면 대체 인력이 바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사장이 직접 들어가야 합니다. 편의점은 오늘 알바가 안 나온다고 문을 닫을 수 없잖아요. 23년을 해도 알바 공백이 생기면 제가 대신 근무하는 건 똑같습니다.

Q. 바로 옆에 경쟁 편의점이 생기면 밤잠도 설칩니까.
신경은 쓰이죠. 바로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옆 편의점만 보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경쟁 상대가 편의점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온라인도 있고 배달도 있고 마트도 있습니다. 결국 ‘옆 가게가 뭘 하나’보다 ‘우리 손님은 뭘 원하는가’를 더 빨리 알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Q. 장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뭔가요.
계속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 번 장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그 방법으로 10년, 20년 갈 수가 없습니다. 손님이 바뀌고 상품이 바뀌고 경쟁 상대도 바뀝니다. 제가 23년 전 하던 방식 그대로 지금도 장사했다면 아마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Q. 반대로 23년을 일해야 생기는 ‘감’도 있지 않습니까.
있죠. 날씨를 보면 오늘 뭐가 잘 나갈지 어느 정도 감이 옵니다. 시간대별로 어떤 손님이 많이 오는지도 알고요. 그런데 그 감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상품이 갑자기 터질 때도 있고 젊은 고객들의 소비 방식도 워낙 빨리 바뀝니다. 오래 장사할수록 오히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편의점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지금보다도 더 ‘물건만 파는 곳’과는 멀어질 것 같습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장을 보고, 잠깐 쉬어가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요. 결국 고객 입장에서 ‘내가 왜 편의점에 가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줘야 합니다. 그 답을 계속 만들어내는 점포가 살아남겠죠.

Q. 편의점 장사, 아직 재미있습니까.
힘든 일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사람 문제도 있고 재고 문제도 있고 매일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그래도 한 자리에서 23년을 있다 보니 손님들의 인생이 보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오던 아이가 어느 순간 혼자 오고, 또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돼 찾아오기도 합니다.

가게 간판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저는 그 모습을 계속 봐왔습니다. 결국 편의점 장사는 물건을 파는 일 같지만 사람을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고 거기에 맞춰 계속 바뀌는 것. 그동안 제가 배운 것도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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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불만족(族) 편집자주
직업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길에 도전한 사람부터 수십 년 한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사람까지.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에는 우리가 몰랐던 일의 희로애락과 삶의 선택이 숨어 있습니다. 일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 다양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하단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면 현직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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