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가수가 빌보드 'Hot 100'에 처음 이름을 올린 날은 2009년 10월22일이었다. 원더걸스 '노바디(Nobody)'의 영어 버전, 76위. 당시 포털 댓글은 냉담했다. 한국에서 '텔 미(Tell Me)'와 '쏘 핫(So Hot)'으로 가요계를 평정한 그룹이 왜 굳이 한국 활동을 멈추고 조나스 브라더스 콘서트의 텅 빈 객석을 상대로 노래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해 원더걸스는 1년 내내 미국의 라디오 쇼와 쇼핑몰, 고등학교 점심시간 무대를 돌았다. 입장 전 텅 빈 아레나에서 'Nobody'를 부르는 영상은 지금 봐도 처연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 76위는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선불 영수증'이었다. 그 영수증이 없었다면 뒤의 모든 기록도 없었을 것이다.
박진영이 그해에 본 것은 차트가 아니라 지도였다. 2007년 모두가 일본 진출을 당연한 성공 공식으로 믿을 때, 그는 한국 시장은 너무 작으니 반드시 미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비가 할리우드에서 쓴맛을 본 직후였고, 미국은 K팝에겐 무덤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가 원더걸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간 이유는 1위라는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선견지명은 두 가지였다. 첫째, 번역이 아니라 문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Nobody'를 단순히 영어로 바꾸지 않았다. 원곡의 복고 소울을 미국의 모타운 문법으로 재편곡하고, 포인트 안무와 후렴의 훅은 그대로 남겼다. 미국 팝의 문장 구조 안에 K팝의 중독성을 끼워 넣으면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13년 뒤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에서 정확히 증명됐다. 영어로 된 디스코 팝이지만, 그 안에 K팝이 10년간 갈고닦은 퍼포먼스와 군무, 팬덤과의 호흡이라는 문법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둘째, 차트보다 시스템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진영이 원한 것은 빌보드 순위 한 줄이 아니라, 한 곡이 어떻게 라디오에 걸리고, 어떻게 지역 프로모션이 짜이고, 어떻게 투어가 굴러가는지에 대한 설계도였다. 그는 실패를 각오하고 아이돌 산업의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러 간 것이다. JYP가 이후 "K팝은 음악이 아니라 시스템이다"라고 말하게 된 근거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실제로 원더걸스의 미국 프로모션 과정에서 겪은 현지 라디오 프로모션과 대형 투어의 오프닝을 쓰는 법은 이후 트와이스와 스트레이 키즈의 미국 진출 전략 교본이 됐다.
그 수업료가 있었기에 다음 장이 열렸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박진영과 정반대의 증명을 보여줬다. 영어 가사 한 줄 없이 7주 연속 2위. 문법을 배우는 대신 춤과 유튜브라는 새로운 언어로 문법 자체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전 세계가 말춤을 췄고, 빌보드는 처음으로 한국어 가사의 힘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2020년 방탄소년단은 '다이너마이트'로 마침내 한국 가수 최초의 'Hot 100' 1위를 찍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로 부른 곡이었다.
하지만 그 바로 다음 1위 곡인 'Life Goes On'은 한국어 가사가 대부분인 곡이었다. 2009년 박진영이 영어로 바꿔야 통한다고 믿었던 공식을, 2020년의 BTS가 한국어 그대로도 통한다는 공식으로 뒤집은 순간이었다. 76위가 없었다면 2위의 신화가 없었고, 2위의 신화가 없었다면 1위의 뒤집기도 없었을 것이다. 빌보드 역사는 그렇게 한 번의 실패가 다음 성공의 문법이 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우리는 이제 빌보드에 한국 이름이 오르는 것이 뉴스가 아닌 시대를 산다. BTS는 27곡, 블랙핑크는 11곡을 Hot 100에 올렸고, 이제는 중소 기획사 출신인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의 'Cupid'나 솔로 가수 로제의 '아파트(APT)'가 틱톡과 스트리밍으로 차트에 진입한다.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는 BTS, 슈퍼엠,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까지 네 팀이 이미 1위를 경험했다.
숫자는 풍족해졌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76위를 기억해야 한다. 1위는 결과를 말해주지만 76위는 과정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가장 화려한 순간은 가장 초라했던 순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이 모든 도전의 맨 앞에 후배들을 위해 해외 무대의 가능성을 먼저 증명한 사람이 있다. 바로 조용필이다. 조용필이 1980년대에 보여준 용기와 성취가 없었다면, 뒤이은 세대의 76위도, 2위도, 1위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진영은 훗날 한 인터뷰에서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은 비즈니스적으로는 실패였지만 그 실패가 없었으면 지금의 트와이스도, 스트레이 키즈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빌보드 1위는 한국 가수가 미국을 정복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15년을 버틴 한국 대중음악이, 마침내 자신의 언어로 세계의 차트를 읽게 만들었다는 증거다. 76위에 머물러서 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1위에서 멈추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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