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30세의 사카모토 료마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동맹을 주선해 메이지유신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6년 25세의 모리타 아키오는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을 창업했다. 1981년 24세의 손정의는 소프트뱅크를 창업해 기존 산업 질서 바깥에서 새로운 정보통신 사업을 일으켰다. 일본을 봉건국가에서 근대국가로, 전쟁 폐허에서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린 힘은 ‘젊은 야성’이었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기보다 무모할 만큼 위험을 감수했고, 안전한 길 대신 불확실성에 자신을 걸었다.최근 만난 한 일본 기업인은 이 같은 현상의 분기점을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시작된 거대한 경제적 굴곡에서 찾았다. 버블 붕괴와 30년에 걸친 디플레이션이 일본인의 야성을 갉아먹었다는 것이다.
오르지 않는 물가, 매뉴얼로 안정된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이직이나 창업보다 제자리를 지키는 편을 택했다. 한번 대기업에 들어가면 평생 고용을 약속하는 사회에서 모험을 할 이유가 점점 사라져갔다.
기업도 비슷했다. 투자보다 현금을 쌓았다. 기존 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가이젠’에는 강했지만, 기존 질서를 깨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능력은 점점 약해졌다. 사전에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네마와시’와 촘촘한 절차는 조직을 안정시켰지만, 동시에 속도와 과감함을 떨어뜨렸다.
일본 내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는 반도체, 조선, 피지컬 AI, 양자 등 17개 전략 분야에 대규모 국고를 투입하고 민간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예산 요구 단계에서 상한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30년간 굳어진 관성과 시스템을 넘어 야성을 깨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재팬 이즈 백’을 외쳤지만 세계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다. 기존의 성공 방식을 놓지 못하고 안정을 택하려는 모습은 이제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최상위권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현상은 그 단면이다.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새로운 기술과 산업에 뛰어들기보다 가장 확실한 자격과 수익이 보장되는 길을 선택하는 사회에서 많은 혁신이 나오기란 어렵다.
일본에 던진 맥킨지의 질문은 한국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은 다시 야성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그 야성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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