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수만 가닥 인연 엮은 '붉은 실의 日작가'

입력 2026-08-31 17:39   수정 2026-09-01 01:33

‘붉은 실의 작가’ 시오타 치하루(54)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 중 하나다.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에 ‘국가대표 작가’로 나섰던 그는 붉은 실을 사용한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다.

시오타에게 붉은 실이란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상징하는 존재. “운명으로 이어진 사람끼리는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이 묶여 있다”는 동아시아 설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고, 한국에서 자주 전시를 여는 친한(親韓)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과 강력한 ‘붉은 실’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해외 작가에게는 다소 생소한 대전에서 시오타가 대규모 전시를 열고, 대전을 소재로 한 설치작품까지 선보이는 데에는 이런 한국과의 인연이 작용했다. 전시 장소인 대전 헤레디움부터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원래 일제가 1922년 식민지 수탈의 거점으로 세운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건물. 2023년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번 개인전 ‘기억의 빛 속으로’에 나온 대형 설치작품 ‘인 더 라이트 오브 메모리’에는 붉은 실과 함께 대전 소제동의 옛 철도관사에서 쓰던 문(門)과 대전시민들의 낡은 신발이 사용됐다. 아이가 처음 신은 신발, 첫 월급으로 장만한 신발, 아들이 선물한 신발 등 여러 사연을 품고 있는 신발들이다. 작가는 “문과 신발은 대전이라는 도시를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을 간직하는 존재”라며 “기억은 과거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어진다는 사실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6·25전쟁의 기억을 담은 작품도 있다. 영상 신작 ‘메모리스 리서페이스’는 작가의 한국인 시어머니가 겪은 전쟁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전시는 대전역 인근 소제동의 아트사이트 소제로 이어진다. 11m 높이에서 붉은 로프가 쏟아지는 ‘더 홈 위딘’에는 대전 시민 1000여 명이 ‘집’에 대한 생각을 적어낸 종이가 매달려 있다. 집은 시오타가 오랫동안 다뤄 온 주제 중 하나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독일로 건너가 3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독일에 있으면 일본이 그립고, 일본에 돌아가면 독일이 그립다”고 말했다.

유리와 철사로 세포의 모양을 표현한 ‘셀’ 연작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두 차례 암을 앓은 작가의 경험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시오타는 “여전히 전시를 할 때마다 수만 가닥의 실을 일일이 손으로 엮는다”며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1일까지.

대전=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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