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기술목록 다 쓰세요"…'곰표 밀맥주' 공무원의 조언

입력 2026-09-02 08:00   수정 2026-09-02 08:05


“비밀유지계약(NDA)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계약하기 전에 꼭 전문 변호사에게 검토받는 것을 권합니다.”

세븐브로이와 대한제분의 ‘곰표 밀맥주’ 분쟁 조정을 담당한 차상훈 중소벤처기업부 기술보호과 사무관은 지난달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술보호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쓰는 것에서 시작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차 사무관은 기술보호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공무원이다.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 10여년간 지식재산권 보호 업무를 맡다가 2019년 경력경쟁채용으로 공직에 들어왔다. 이후 줄곧 기술보호 업무를 담당했다. 알고케어, 프링커코리아, 미쓰잭슨 등 기술분쟁 조정 사건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런 그도 곰표 밀맥주 분쟁에 대해서는 “조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미 3년가량 이어진 분쟁이어서 양측의 갈등이 깊어진 상태였다. 조정 절차가 시작될 당시 세븐브로이는 회생 절차를 밟을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해 있었다. 양측 모두 조정 자체에는 뜻을 같이했지만, 원하는 합의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차 사무관은 곰표 브랜드의 인지도 상승효과와 세븐브로이가 부담한 투자·재고 손실 등을 따져 양측을 설득했다. 세븐브로이의 경영 정상화뿐 아니라 분쟁을 상생으로 전환하기 위한 대기업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 결과 대한제분은 지난 4월 23억원의 상생협력기금을 출연하기로 했다.

그가 중소기업에 가장 먼저 당부하는 것은 계약서다. 차 사무관은 “다른 기업과 공동사업을 하면서 기술 침해를 예방하려면 계약 단계에서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기술 목록부터 꼼꼼하게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계약서에 ‘기술자료를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포괄적인 문구만 적고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차 사무관은 “중소기업은 회사의 고유 기술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상대방은 이미 공개된 내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나중에 기술 침해 여부를 명확하게 가리기 어렵다”고 했다.

NDA 역시 단순히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감한 자료의 열람부터 보관·반환·폐기까지 구체적인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동사업이 성공하더라도 기존 계약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계약 기간 중이라도 추가 계약이나 특별조항을 마련해야 잠재적인 분쟁의 불씨를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표가 계약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모두 챙기기 어렵다는 지적에는 정부의 기술보호 지원제도를 활용할 것을 권했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운영하는 기술보호 법무지원단 등을 통해 NDA 검토부터 분쟁 초기 대응까지 변호사의 도움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차 사무관이 특히 강조한 것은 ‘신속한 대응’이다. 중소기업이 기술 침해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통상 6개월가량 시차가 있는데, 뒤늦게 침해 사실을 파악하고도 법무 비용이나 거래관계 단절을 우려해 대응을 미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은 무형자산이어서 망설이는 순간에도 침해가 계속될 수 있다”며 “침해 사실을 확인했다면 최대한 신속하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분쟁을 둘러싼 중소기업의 대응 방식도 과거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차 사무관은 “과거에는 힘없는 중소기업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린다”며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노하우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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