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주가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이어 브로드컴 실적이라는 시험대에 오른다. 시장은 실적 수치보다 2027회계연도 매출과 수주 전망을 통해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에 주목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브로드컴 실적 발표를 통해 AI 반도체 수요의 지속성을 재확인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한 시장의 투심이 살아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한국시간으로 3일 오전 6시 2026회계연도 3분기(2026년 5~7월) 실적을 발표한다. 브로드컴은 구글 등 빅테크에 맞춤형 AI 반도체(ASIC)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칩을 공급하는 빅테크다.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와 다른 영역에서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브로드컴의 ASIC 생산 확대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수요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브로드컴의 실적과 수주 전망은 빅테크의 AI 투자 현황과 지속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특히 시장은 브로드컴이 실적 발표에서 2027회계연도 AI 매출 전망을 구체화할지 주목하고 있다.
JP모간은 브로드컴의 AI 매출이 2026회계연도 560억달러를 넘어선 뒤 2027회계연도에는 회사 측 전망인 1000억달러 이상을 웃도는 13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의견 '비중확대'와 목표주가 580달러도 유지했다.
브로드컴 주가는 올해 350달러에서 출발해 6월 초 480달러를 넘었지만 이후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확산하면서 조정을 거쳐 370달러까지 내려왔다. 브로드컴이 이번 실적 발표에서 기대 이상의 AI 매출과 수주 전망을 제시하면 엔비디아가 확인한 AI 수요 강세를 재차 뒷받침할 수 있다.
반대로 실적이 시장 전망을 웃돌더라도 가이던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AI 투자 둔화 우려가 다시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박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실적에서는 2026·2027회계연도 AI 매출 가이던스의 상향 여부와 이를 뒷받침할 공급망 확보 여부가 핵심 관전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앞서 엔비디아는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2028년까지 AI 반도체 공급 병목이 이어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AI 인프라 수요가 견조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다만 국내 반도체주는 엔비디아발 훈풍을 이어받지 못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8월 반도체 업종은 1.5% 하락하며 주요 업종 가운데 부진한 흐름을 나타냈다. 반도체 업종의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도 지난 6월 61.6%에서 53.2%로 축소됐다.
금리 상승과 맞물린 외국인 매도세가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최근 미국 장기금리가 오르면서 성장주인 반도체주의 할인율 부담이 커진 가운데 외국인은 8월 코스피에서 10조1659억원, 반도체 업종에서 7조1300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종목별 순매도액은 SK하이닉스가 약 6조4000억원, 삼성전자가 8200억원에 달했다.
시장이 이번 실적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브로드컴과 맺고 있는 협력 관계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에서 브로드컴과 차세대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2030년까지 향후 5년간 메모리 및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 2000억달러(약 275조원) 규모의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HBM을 비롯한 최첨단 메모리 솔루션을 공급해 브로드컴 AI 가속기 성능 강화에 기여한다.
SK하이닉스 역시 브로드컴과의 '원팀' 체제를 한층 공고히 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월 미국 새너제이 브로드컴 본사에서 혹 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중장기 메모리 시장 전망과 공급 전략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SK하이닉스는 향후 HBM 로드맵과 기술 개발 방향을 공유하고, 브로드컴의 AI 칩 설계 초기 단계부터 자사의 최첨단 메모리 기술이 선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협력 범위를 대폭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국내 반도체 '투톱'과 브로드컴의 공조가 깊어지는 만큼 이번 실적 발표는 단기적인 지수 변동성을 넘어 양사의 중장기 성장성을 다시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브로드컴을 필두로 한 글로벌 빅테크의 AI 칩 수요가 견조하게 유지될 경우 원천 기술과 독보적인 HBM 공급망을 선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혜 폭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브로드컴 실적에서는 향후 분기 AI 매출 가이던스 변화와 매출 인식 속도가 중요하다"라며 "그 결과가 미국 AI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에도 높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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