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장 신설 등 경영상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투자를 실행하기 위해 인력 운영 계획을 구체화하는 순간 파업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반도체, AI 등 핵심 첨단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가 노사 갈등에 묶여 적기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침 원칙상 공장 신설·이전, 사업 매각·인수, AI 신기술 도입 등 사업 경영상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 전환 등 인력 운영 계획이 발표돼 근로조건 변동이 예상되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예외 조항이 광범위하게 해석될 여지가 커 기업이 신규 투자나 신기술 도입 과정에서 필수적인 인력 재배치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신규 공장 가동 시 인력 운영 계획을 수립하는 절차가 예외 조항에 걸려 단체교섭이나 파업 대상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기존 사업장의 숙련 인력을 호남 등 신규 팹으로 배치 전환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방 이전에 따른 근무지 변경이나 출퇴근 여건 변화 등을 이유로 노조가 반발하며 인력 재배치를 단체교섭 의제로 삼으면 800조원을 투입하는 호남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 자체가 첫 삽조차 뜨기 전에 노사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와 법조계에선 이번 지침이 고용 감축을 위한 구조조정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규 투자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는 사업 확장 목적의 인력 이동까지 구조조정과 똑같이 취급해 교섭·쟁의 대상으로 삼는 건 기업의 고유한 인사·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행정지침이라는 규범 형식 자체의 한계도 문제로 지목된다. 지침은 임시방편일 뿐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해석이 흔들리면 노사 모두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따라 노동쟁의 범위에 관한 기준을 법률이나 시행령에 명문화하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업 투자 결정에 연동된 배치 전환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노조에 사실상 투자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미국, 일본이 파격적 지원으로 팹 완공을 앞당기는 속도전 속에서 국내 기업만 인력 배치를 둘러싼 분쟁으로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계도 일제히 우려를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시행령 등 보다 명시적이고 안정적인 법적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을 과도하게 제한함은 물론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의 차질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김채연/곽용희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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