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 연습을 위한 레인지. 골프 클럽이 꽂혀 있는 스탠드백으로 한 여성이 손을 뻗으며 다가간다. 그러자 갑자기 한 남성이 달려와 여성을 어깨로 거칠게 밀친다. 바닥에 쓰러진 여성을 내려다보며 남성이 말한다. "내 드라이버에 손대지 마." 화면 하단에는 '경고했다'는 문구가 뜬다.
짧은 유튜브 영상 하나에 세계 골프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더 젊고 매력적인 스포츠로 외연을 넓혀가던 골프가 선을 넘었을 때 벌어지는 '재앙'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다. 영상은 이내 삭제됐고 해당 브랜드는 사과했다. 거액의 기부도 약속했다. 광고를 만든 유튜브 채널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 타이틀 스폰서에서도 물러났다. 그럼에도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유명 골프 브랜드의 마케팅 실패를 넘어 더 젊고 넓은 시장을 노리는 골프산업에 켜진 경고등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영상은 곧 삭제됐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SNS를 통해 영상이 계속 퍼졌고 캘러웨이 불매 움직임으로 번졌다. 결국 영상 삭제 5일 만인 25일 칩 브루어 캘러웨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사과했다. 그는 "해당 영상은 굿굿 골프가 제작했지만, 게시되기 전 우리의 승인을 받았다. 승인은 결코 이루어지지 말았어야 했다"며 "영상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영상의 내용은 부적절했으며 캘러웨이의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차별, 가정폭력, 또는 위협적인 행위에도 명백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27일에는 굿굿골프와의 파트너십 종료, 여성 폭력 예방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100만달러 기부 계획을 밝혔다.
213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슈퍼 인플루언서' 굿굿골프도 직격탄을 맞았다. 온라인 기반 크리에이터인 굿굿골프에게 캘러웨이와의 협업은 주류 골프시장으로 영역을 넓힐 기회였다. 굿굿골프 측은 문제가 된 광고에 대해 "특정 인물에게 집착하는 내용의 영화 '옵세션'을 패러디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캘러웨이와의 협업은 끝났고 오는 11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릴 PGA투어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에서도 물러났다.
PGA투어와 글로벌 골프 용품사가 이들과 손을 잡은 것도 그래서다. 골프는 클럽, 의류, 신발 등 필요한 장비가 많고 소요되는 시간도 길기에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는데 한계가 컸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유입된 젊은 골퍼들이 그대로 골프를 즐기면서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젊은 소비자와 만날 새로운 통로가 간절했던 레거시 브랜드들은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을 늘렸다. 굿굿골프는 올해 PGA투어 대회 타이틀 스폰서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영향력을 키웠다.

이번 광고는 그 과정에서 나온 첫 파열음이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기반 SN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회수, 그를 위해서는 화제성이 필요하다.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콘텐츠가 힘을 얻는 이유다. 이번 광고는 '새로움'이 한순간 '일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를 잡아내고 걸러내야 할 캘러웨이의 '필터'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번 광고는 굿굿골프가 임의로 제작해 올린 영상이 아니다. 캘러웨이는 광고를 검토하고 승인했다. 여성을 거칠게 밀쳐 쓰러뜨린 뒤 내려다보며 경고하는 장면이 기획과 제작, 검토를 거쳐 세상에 공개될 때까지 레거시 브랜드의 의사결정 단계 어디에서도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을 소재로 활용해 여성 골퍼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는 점은 캘러웨이에게 지우기 힘든 상흔으로 남을 전망이다. 여성은 최근 미국 골프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미국 내셔널골프재단(NGF)에 따르면 2019년 이후 미국에서 늘어난 여성 온코스 골퍼는 230만명에 달한다. 이 기간 전체 온코스 골퍼 순증 인원의 약 60%가 여성이었다. 2024년 미국의 여성 및 여자 주니어 골퍼는 약 790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단순히 골프를 치는 여성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기존 제품에 만족하지 못한 여성 골퍼들이 직접 골프웨어 브랜드를 만드는 등 골프시장의 또다른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산업이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소비층과 사업 영역이 바로 여성이라는 뜻이다.
캘러웨이가 젊은 골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인터넷의 문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의 또다른 핵심 성장축인 여성 소비자의 반발을 샀다. 젊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얻기는 커녕 여성 폭력에 대한 무감함을 드러냈다. 뒤늦은 사과와 100만달러 기부만으로 이번 사태의 여파가 마무리되기 어려워보이는 이유다.
젊은 골퍼를 다시 필드로 불러들이는 것은 국내 골프업계의 주요 과제가 됐다. 젊은 골퍼, 여성 골퍼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골프업계는 레거시 미디어보다 유튜브와 SNS, 인플루언서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다.
한 국내 골프업계 마케팅 관계자는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중이 크게 늘면서 골프가 지켜야 할 '선'이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던 상황"이라며 "이번 사건은 젊고 새로워지더라도 골프의 본질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새삼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캘러웨이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골프업계를 대표하는 레거시 브랜드에서 이런 광고가 별다른 필터 없이 승인됐다는 점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며 "'튀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면서 판단 기준까지 느슨해진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골프 시장은 분명 지금보다 젊어져야 한다. 새로운 골퍼가 유입되어야 시장이 커지고 활력이 생긴다. 유튜브와 SNS, 크리에이터를 활용한 마케팅 역시 분명한 역할과 수요가 있는 만큼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골프는 골프다"라는 점이다. 복장이나 콘텐츠, 소통 방식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젊어지고, 새로워진다 한들 골프의 가장 큰 가치인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자기 관리, 에티켓과 페어플레이는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랜 기간 골프가 이어져온 이유이자, 골퍼들이 자부심을 갖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온라인 기반 골프 콘텐츠의 실패라기보다는 골프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레거시 기업이 해야할 역할을 보여줬다. 새로운 시도를 하되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기준을 세우고 걸러내는 역할이다. 2030세대를 잡아야 하는 골프 시장이 '혁신과 일탈의 경계선'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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