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디지털 자산 혁신서 뒤처지는 한국

입력 2026-09-04 17:38   수정 2026-09-05 00:12

“디지털자산을 포함한 디지털 금융 혁신이 폭넓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 변혁적인 역할(the transformative role)을 할 수 있다.”

지난 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뒤 나온 의장성명의 한 대목이다. 성명에는 “민간 부문이 디지털 금융의 혁신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도 언급됐다. 중국 반대로 공동성명 채택은 무산됐지만, 중국마저 디지털자산 혁신을 다룬 조항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페이스북이 2019년 스테이블코인 리브라 발행 계획을 내놓자 스테이블코인은 국제 금융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G20은 관련 위험이 충분히 해소되기 전에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G20은 이후에도 금융 안정과 규제에 더 방점을 찍었다. 불과 7년 만에 디지털자산을 바라보는 G20의 시선이 혁신으로 옮겨간 것이다.

물론 이번 성명이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선언은 아니다. 금융 안정과 통화·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전제는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규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위험을 통제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명확한 경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금융사는 디지털자산을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보고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UBS 등 글로벌 은행은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결제회사도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결제·정산망에 연결하는 작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주목되는 건 전통 금융기관이 쌓은 신뢰 때문이다. 자금력과 고객 기반에 더해 규제 대응 능력까지 갖춘 만큼 기존 가상자산사업자보다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기존 금융회사가 갖춘 고객 접점과 보안·내부통제 역량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달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국회에 발의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제정되더라도 사업의 기준이 되는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을 마련해야 한다. 법 통과 후 실제로 시장과 기업이 움직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회사가 디지털자산 시장을 선점하면 국내 금융사가 주도권을 확보할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법 제정과 동시에 후속 조치도 함께 속도를 낼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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