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2801만원, 책상 4349만원, 카펫 7636만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파는 가구 가격이다. 수천만원을 상회하는 비싼 가격이지만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선 ‘꿈의 가구’로 꼽힌다. 가방이나 옷을 팔던 명품 브랜드들이 소비자의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최근 서울 강남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6’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올해 처음 등장한 ‘머티리얼 프랙티스(Material Practice)’는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접점을 다루는 새 섹션이다. 공예와 소재에 기반한 작업이 오늘날 현대미술과 컬렉팅의 영역을 어떻게 넓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는 30개국 125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여했다.
패션과 가구,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는 명품업계에서도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에르메스는 가구와 식기를 만들고, 펜디와 아르마니는 소파와 침대, 조명을 판다. 보테가 베네타는 패션쇼 관람석 자체를 가구 디자이너의 설치작품으로 꾸몄다. 한때 명품회사의 사업 영역에 가방에서 신발과 향수, 주얼리로 비슷한 분야로 확장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의 공간으로 그 영역을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에르메스도 최근 홈 컬렉션을 보강하고 있다.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는 영국 디자인 듀오 바버 오스거비가 디자인한 ‘스타디움 데르메스’ 테이블과 팔라듐 마감 금속에 가죽·말총·목재를 결합한 신규 홈 오브제 라인 ‘팔라디옹 데르메스’를 공개했다. 가구·생활 영역 제품군을 한층 넓혔다.
에르메스는 1837년 파리에서 마구와 안장을 만드는 공방으로 출발한 회사다. 가죽과 목재, 금속을 다루는 공예 기술은 브랜드의 뿌리다. 이를 가방과 의류뿐 아니라 의자와 테이블, 오브제로 확장하는 것은 에르메스가 강조해온 장인정신을 다른 생활 영역으로 옮기는 작업에 가깝다는게 명품업계의 시각이다.물론 가격대는 상당하다. 에르메스의 ‘레 네세세르 데르메스’ 체어 가격은 국내 공식 온라인몰 기준 2801만원이다. 같은 라인의 새틀라이트 커피테이블 미디엄 모델은 2836만원이다. ‘메티에’ 데스크는 4349만원에 달한다. ‘리이디션 J.-M. 프랑크 파 에르메스 클럽’ 암체어 가격은 6698만원이다. 카펫 가격은 웬만한 중형차를 넘어서기도 한다. 대형 사이즈 카펫인 ‘코르들리 트렘플린’ 가격은 7636만원이다.
이 스튜디오는 최고급 아파트뿐 아니라 개인 요트와 비행기, 빌라, 고급 주거단지의 디자인까지 맡는다. 미국 마이애미 ‘레지던스 바이 아르마니/까사’에서는 공용공간과 편의시설, 주거 유닛의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아르마니 옷을 입고 아르마니 가구에 앉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다.
올해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선 홈 컬렉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Origins’라는 이름 아래 브랜드를 대표해온 램프와 암체어, 콘솔, 바 캐비닛 등 8개 디자인을 새로운 소재와 마감으로 재해석했다.

펜디도 1987년부터 ‘펜디 까사’를 운영하고 있다. 펜디 까사는 소파와 암체어, 침대, 테이블, 조명, 카펫 등 집 안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룬다. 패션과 가구의 연결도 적극적이다. ‘피카싯’ 소파와 암체어는 펜디의 대표 가방인 ‘피카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가죽을 비롯한 소재와 브랜드 디자인 언어를 가방에서 가구로 옮긴 사례다.
보테가 베네타는 가구를 별도 상품군으로 확대하기보다는 패션과 ‘컬렉터블 디자인’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 2월 밀라노에서 공개한 2026 겨울 컬렉션 쇼에서는 영국 가구 디자이너 맥스 램이 만든 ‘421 Chairs’라는 좌석 설치작품을 사용했다. 패션쇼 관람객이 앉는 의자까지 쇼의 디자인 언어를 구성하는 작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과거 명품 브랜드가 유명 작가의 미술품으로 매장을 꾸몄다면 이제는 브랜드가 가구와 디자인 오브제의 제작·기획 자체에 깊숙이 관여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가구와 인테리어는 브랜드가 고객과 관계를 확장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다. 향수와 소품으로 처음 브랜드에 진입한 고객이 의류와 가방, 주얼리와 시계를 거쳐 식기와 가구까지 구매 범위를 넓힌 다면 브랜드가 소비자의 생활 전반에 더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다.
패션보다 공간이 브랜드의 세계관을 더 오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옷과 가방은 계절이나 유행에 따라 바뀌지만 의자와 테이블, 조명은 오랜 기간 한 공간을 채운다.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는 소재와 색, 형태, 장인 기술을 소비자의 일상에 가장 깊숙이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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