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이 2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감사위원 한 자리를 둘러싼 막판 표 대결이 시작됐다.
오는 9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선임될 감사위원은 한 석이다. 숫자는 작지만 양측이 내세우는 경영 철학은 정면으로 맞선다. 고려아연은 ‘회계·감사 전문성’을, 영풍·MBK는 ‘경영진에 대한 독립적 견제’를 강조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9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호텔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집중투표 방식의 독립이사 4명과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1명을 선임한다. 현재 등기이사는 14명이다. 지난 6월 독립이사 4명이 사임하면서 생긴 공석을 이번 주총에서 채우는 구조다.
현재 이사회는 최윤범 회장 측 9명, 영풍·MBK 측 5명으로 분류된다. 집중투표 대상인 독립이사 4석은 양측이 2석씩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측이 각각 2명의 후보를 추천한 데다 지분 격차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대로라면 이사회는 11대7 구도로 재편된다. 감사위원 한 석을 어느 쪽이 가져가느냐에 따라 12대7 또는 11대8이 된다.
지분만 보면 영풍·MBK 측이 앞선다. 시장에서 파악하는 지분은 영풍·MBK 연합 약 41.1%, 최윤범 회장 측 우호지분 약 37.9%다. 국민연금은 5.48%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고려아연에 대한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다만 감사위원 선임에서는 지분율이 그대로 의결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하는 이른바 ‘3%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영풍·MBK가 지분에서 앞서더라도 기관투자자와 일반주주의 표심이 중요해지는 구조다.
고려아연 측 후보는 백인규 전 딜로이트안진 파트너다. 한국과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했고 회계감사와 재무자문 분야에서 약 30년간 경력을 쌓았다. 고려아연 측은 대규모 투자와 사업 재편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회계·감사 및 내부통제 분야 전문성을 갖춘 감사위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영풍·MBK 측은 박유경 후보를 내세웠다. 핵심 논리는 독립적인 감시 기능이다. 경영권 분쟁 당사자인 현 경영진이 추진하는 사업과 자본 배분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인사가 감사위원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결권 자문사들의 판단은 백 후보 쪽에 집중됐다. 9월 7일 현재 의안 분석 보고서를 낸 주요 자문사 9곳 가운데 8곳이 백 후보 찬성을 권고했다. 박 후보를 찬성한 곳은 한국ESG기준원 한 곳으로 파악된다. 주요 자문사들은 백 후보의 회계·감사·내부통제 경험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자문사 의견이 주총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표결에서는 자문사 권고를 따르지 않는 기관과 일반주주가 존재할 수 있다. 3%룰이 적용되는 만큼 실제 의결권 행사 규모와 참석 주주의 선택이 중요하다.
이번 표 대결을 단순한 감사위원 한 자리의 경쟁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 중심에서 핵심광물과 2차전지 소재, 반도체 소재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 테네시주에서 추진하는 통합제련소 ‘프로젝트 크루서블’도 대표적인 신규 사업이다.
경영 성과는 현 경영진이 내세우는 주요 근거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12조4446억원, 영업이익 1조3332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62.5%, 151.5% 증가한 수치로 상반기 기준 최대 실적이다.
영풍·MBK 측은 실적과 지배구조 문제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경영 성과가 있더라도 자본 배분과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경영권 분쟁의 쟁점이 ‘누가 회사를 운영할 것인가’에서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감독할 것인가’로 넓어지는 양상이다.
9일 임시주총에서 어느 쪽이 감사위원 한 석을 가져가더라도 경영권 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추가적인 이사회 재편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번 주총은 최종전이라기보다 다음 표 대결의 판을 짜는 중간 승부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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