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분기 매출이 떨어졌어. 원인이 뭐지?”
과거라면 담당자를 불러 자료를 요청하고 며칠간 분석한 뒤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인공지능(AI)에게 매출 데이터와 시장 정보를 넣으면 몇 분 안에 답이 나온다. “경쟁사의 가격 인하, 신규 고객 유입 감소, 특정 채널의 전환율 하락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리더가 다시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AI는 가격 프로모션, 고객관계관리(CRM) 강화, 채널 효율화, 신규 고객 캠페인까지 우선순위를 붙여 제시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문제를 물었을까? 매출 하락의 원인이 신규 고객 감소가 아니라 핵심 고객의 이탈이라면? 가격이 아니라 제품의 매력도 저하라면? 영업의 문제가 아니라 고객의 구매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이라면? 잘못 정의된 문제에 아무리 좋은 답을 붙여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틀린 문제에 대한 완벽한 답은 결국 ‘정교한 오답’일 뿐이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있다. 그는 회사 경험도, 조직의 이해도 부족했다. 하지만 바둑을 통해 한 가지를 배웠다. 눈앞의 돌이 아니라 판 전체를 보는 것. 바둑의 고수는 돌을 빨리 잡는 사람이 아니다. 어디서 흐름이 바뀌는지,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 지금의 한 수가 이후의 판세를 어떻게 바꿀지를 본다.
AI 시대의 리더에게도 바로 이 능력이 필요하다. 문제를 빨리 푸는 리더에서 문제를 먼저 보는 리더로의 전환이다. 왜 지금 ‘문제를 보는 능력’이 중요해지는가.
◆리더는 ‘문제’를 봐야 한다
AI 시대, 미래 리더의 결정적 경쟁력은 ‘문제 해결(Problem Solving)’보다 ‘문제 발견(Problem Seeing)’이다
첫째, 답은 넘쳐나고 좋은 문제는 희소해지고 있다. 오랫동안 조직에서 뛰어난 사람은 ‘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경험이 많고 전문성이 높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었다. AI가 이 공식을 바꾸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5 Work Trend Index’는 AI를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지능(Intelligence on tap)’이라고 표현했다. 전 세계 31개국 3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2%의 리더는 지금을 전략과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분석하고, 정리하고, 대안을 만드는 지적 역량을 필요할 때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희소해지는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고객 불만이 늘었다고 해보자. “불만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고 물으면 AI는 상담 인력 확대, 챗봇 도입, 고객 의견(VOC) 분석, 보상 기준 개선 등 수십 가지 해법을 제안한다. 하지만 뛰어난 리더는 질문부터 바꾼다. “고객이 불만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이 달라지면 문제의 경계도 달라진다. 콜센터의 문제가 고객 여정의 문제가 되고, 서비스 교육의 문제가 상품 설계의 문제가 되며, 직원의 친절 문제가 KPI와 운영체계의 문제로 바뀔 수 있다.
AI가 답의 생산비용을 낮출수록 경쟁력은 답의 질(Answer Quality)에서 질문의 질(Question Quality)로 이동한다. 미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AI보다 더 많은 답을 아는 능력이 아니다. AI가 풀어야 할 문제를 정확히 선택하는 능력이다.
둘째,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는 ‘보이는 문제’가 아니라 ‘숨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쉽게 보이는 것은 대부분 문제가 아니라 현상(Symptom)이다. 매출이 떨어졌다, 원가가 올랐다, 고객 불만이 늘었다, 퇴사율이 높아졌다. 이것들은 결과다. 리더의 역할은 결과 뒤에 숨어 있는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현장의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하자. 처음에는 “직원의 숙련도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 해법은 교육이다. 그런데 생산계획이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고 있다면 문제는 역량이 아니라 계획 프로세스다. 조금 더 들어가보니 영업부서가 고객 요구를 과도하게 받아들이면서 생산계획이 흔들리고 있다면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영업 정책이다. 다시 보니 회사가 고객별 수익성보다 매출 규모만 KPI로 관리하고 있다면 진짜 문제는 현장 생산성이 아니라 경영관리 시스템의 설계일 수 있다. 같은 현상도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처방은 완전히 달라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의 ‘Future of Jobs Report 2025’에서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한 핵심 역량 1위 역시 AI 기술이 아니라 분석적 사고(Analytical Thinking)였다. 응답 기업의 69%가 이를 핵심 역량으로 꼽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사고가 덜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분석을 AI가 해줄수록 인간은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리더가 봐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숫자 뒤의 구조이고,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반복해서 만드는 시스템이다.
셋째, AX의 성패는 AI 도입보다 ‘문제 재정의’에 달려 있다.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하고 있다. 회의록을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문서를 검색하고, 마케팅 문구를 만든다. 분명 생산성은 올라간다. 하지만 기존 업무를 그대로 둔 채 일부 작업만 AI로 더 빨리 처리하는 것은 전환(Transformation)이 아니라 자동화(Automation)에 가깝다.
진짜 변화는 질문이 다르다. “이 일을 AI로 어떻게 할까”가 아니다. “AI가 존재하는데도 이 일을 지금 방식대로 계속해야 하는가?” 맥킨지(McKinsey)의 ‘State of AI’는 생성형 AI를 통해 실질적 성과를 만드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업무흐름 재설계(Workflow Redesign)를 강조한다.
AI의 가치는 도구 하나를 더 붙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데 있다. 바로 여기에 리더의 새로운 역할이 있다. AI 도입을 승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왜 아직도 이렇게 일하고 있는가”를 묻는 사람. 기존 업무를 더 빠르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없앨 일은 무엇인가, 바꿀 일은 무엇인가, 새롭게 만들 일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결국 기술 도입(Technology Adoption)보다 문제 재정의(Problem Reframing)의 문제다.
◆‘문제를 보는 힘’은 훈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문제 발견은 타고난 직관만의 영역이 아니다. 몇 가지 사고 습관으로 충분히 훈련할 수 있다.
첫째, 현상을 문제라고 부르지 말라.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라.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하다. 처음 보이는 문제를 진짜 문제라고 믿지 않는 것.“직원들이 주인의식이 없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 “회의에서 의견을 내지 않는다.” 왜 의견을 내지 않는가? “말해도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결국 상사가 정해 놓은 방향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직원의 태도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리더의 의사결정 방식과 조직의 심리적 구조가 문제일 수 있다. 리더가 반복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원인인가, 결과인가?” 보이는 현상을 곧바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 현상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보아야 한다. 좋은 리더는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이기 전에 문제를 성급하게 확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둘째, 평균보다 ‘이상한 것’을 보라. 차이·모순·예외가 변화의 신호다. 많은 리더가 평균과 전체 추세를 본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평균 밖에서 먼저 나타난다.
전체 고객 만족도는 비슷한데 20대 고객 만족도만 떨어진다. 전체 퇴사율은 그대로인데 2~3년 차 핵심인재의 이탈만 늘어난다. 매출은 성장하는데 재구매율은 하락한다. AI 활용률은 높아졌는데 의사결정 속도는 그대로다. 이럴 때 리더가 던져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왜 이것만 다르지?” 혁신의 단서는 거대한 문제보다 작은 이상 징후에서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불편, 설명되지 않는 숫자, 예상 밖의 고객 행동, 기존 상식과 맞지 않는 데이터가 그것이다.
AI에게도 단순히 “분석해줘”라고 할 것이 아니다. “평균과 다른 집단을 찾아줘.” “최근 패턴이 달라진 지점을 찾아줘.” “서로 모순되는 데이터를 찾아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상징후를 찾아줘.” AI를 답변 기계(Answer Machine)가 아니라 문제 탐지기(Problem Radar)로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 해결책보다 먼저 문제를 세 번 바꿔 써라. 문제 재정의(Reframing)가 해법의 수준을 결정한다. “회의 시간을 어떻게 30% 줄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면 회의시간 제한, 참석자 축소, 사전자료 배포 같은 해결책이 나온다. 하지만 문제를 바꿔보자.
“왜 이렇게 많은 회의가 필요한가?” 한 번 더 묻는다. “왜 회의를 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이 진행되지 않는가?” 그리고 다시 묻는다. “우리 조직의 의사결정권과 정보는 적절한 곳에 배치되어 있는가?” 처음에는 ‘회의 효율화’ 문제였다. 마지막에는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 문제가 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해법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일수록 한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 번째 문제 정의를 믿지 말 것. 최소한 세 번은 다시 정의해봐야 한다.
“정말 이것이 문제인가?” “다른 관점에서는 무엇이 문제인가?” “고객이라면 이 문제를 무엇이라고 부를까?” “경쟁사 최고경영자(CEO)라면 무엇을 문제라고 볼까?” “AI가 처음부터 이 업무를 설계한다면 무엇부터 없앨까?”
좋은 문제 재정의는 답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경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미래 리더의 역할은 이름을 붙여본다면 ‘최고 문제발견 책임자(CPFO) : Chief Problem-Finding Officer’일 것 같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대안을 만들고, 보고서를 쓰고, 아이디어를 제안할수록 리더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AI는 수많은 답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문제라고 규정할지, 무엇은 무시하고 무엇은 반드시 바꿔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리더의 몫이다.
그래서 앞으로 리더를 평가하는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이 리더는 얼마나 많은 답을 알고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리더가 온 뒤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무엇을 보기 시작했는가?” 좋은 리더는 답을 가지고 등장한다.
탁월한 리더는 새로운 문제를 가지고 등장한다.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숫자 뒤에 숨어 있는 변화를 발견하며, 작은 이상징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문제를 먼저 본다.
다시 바둑을 생각해보자. 고수는 돌을 빨리 놓는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돌을 볼 때 판을 보는 사람이다. AI 시대의 리더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답을 찾을 때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발견하고, 남들이 현상을 볼 때 그 뒤의 구조를 보고, 남들이 현재를 관리할 때 다음 문제를 먼저 보는 것. 그것이 미래 리더의 경쟁력이다.
AI 시대에 가장 강력한 리더는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리더십의 본질일 것이다.
김광진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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