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알리츠, 英소송 패소…법원 “JLL 평가 미흡했지만 유효”

입력 2026-09-09 09:22   수정 2026-09-11 09:33

이 기사는 09월 09일 09:2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유동성 위기의 핵심 변수였던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감정평가를 뒤집기 위해 제기한 영국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JLL의 평가 작업이 미흡했고 평가 절차에도 취약점이 있었다고 지적했지만 9억2000만유로로 산정한 감정평가는 대출약정상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파이낸스타워 임대료 수입을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도 그대로 유지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국 고등법원 상사법원은 전날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벨기에 현지법인 투르데피낭스(Tour des Finances NV)가 대주단 대리인인 CBRE론서비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측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이알글로벌리츠도 공시를 통해 “JLL 감정평가의 유효성이 인정돼 캐시트랩이 지속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파이낸스타워의 적정 가치 자체가 아니라, JLL의 9억2000만유로 평가가 대출약정상 유효한 감정평가로 인정될 수 있느냐였다. 그 과정에서 대주단 측의 부당한 개입이나 JLL의 편향이 있었는지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법원은 결국 JLL 평가가 계약상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제이알 측은 JLL의 평가액이 기존 평가들과 크게 엇갈린다는 점을 근거로 감정평가의 유효성을 문제 삼았다. 파이낸스타워는 2020년 12억유로가 넘는 가격에 인수됐다. BNP파리바리얼에스테이트는 2024년 10월 자산가치를 11억500만유로로 평가했고, 나이트프랭크도 이후 10억유로를 웃도는 평가를 내놨다. 제이알 측 자산관리사가 의뢰한 컬리어스의 비공식 평가도 약 10억6900만유로였다. 반면 JLL은 지난 3월 첫 평가안부터 9억2000만유로를 제시했고 최종 보고서에서도 같은 가격을 유지했다.

JLL 평가가 적용되자 파이낸스타워의 담보인정비율(LTV)은 캐시트랩 기준인 52.5%를 넘어 61.02%까지 뛰었다. 파이낸스타워 임대료 수입이 캐시트랩 계좌에 묶이면서 제이알 측이 현금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려워졌다. 앞서 제이알 측은 현지 감정평가 확정 지연 등을 이유로 올해 초 추진한 12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철회했다. 이후 환헤지 정산과 단기 차환 부담까지 겹치면서 지난 4월 27일 만기가 돌아온 400억원 규모 전자단기사채를 갚지 못했고 같은 날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판결문에는 JLL 평가 과정의 불균형도 고스란히 담겼다. JLL은 지난 3월 27일 9억2000만유로라는 첫 계산 결과를 대주단에 전달했고 4월 2일 전체 보고서 초안도 먼저 넘겼다. 반면 제이알 측은 4월 10일 금요일 업무 종료 뒤에야 초안을 받아 다음 영업일 오후 2시까지 의견을 내야 했다. JLL 관계자도 재판에서 대형 자산 평가치고 질의·응답 절차가 짧고 최종 보고서를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던 점이 이례적이라고 증언했다. 재판부 역시 실무 담당자의 업무와 할인현금흐름(DCF) 교차검증 등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대주단 측이 낮은 평가를 기대했던 정황도 법정에서 확인됐다. 재판부는 CBRE론서비스가 JLL 선임 당시 9억5000만유로 이하의 평가를 예상했고 한 곳 이상의 대주도 캐시트랩이 발생하는 결과를 원했다고 봤다. 다만 특정 결과를 원한 것과 감정평가사를 압박해 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JLL이 독립성을 잃었거나 편향된 평가를 했다는 제이알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JLL의 평가가 뛰어난 작업은 아니었고 더 잘할 여지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도 대출약정상 감정평가로 인정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평가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평가가 조작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캐시트랩 발생 역시 유효하다고 결론 내렸다.

제이알 측은 법원이 JLL 평가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도 계약상 효력을 인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판결 자체를 다시 다투기보다 리파이낸싱과 임대차 연장 등을 통해 정상화를 앞당기는 데 무게를 두기로 했다.

당장 핵심은 신규 대주 확보다. 제이알 측은 캐시트랩이 유지되면서 연간 2000만유로 이상의 벨기에 배당수입이 현지 담보대출 상환에 우선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기존 대주단의 대출을 신규 금융기관 대출로 갈아타는 리파이낸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복수 금융회사와 대출 조건을 협의하면서 관련 실사도 진행 중이다. 캐시트랩 지속과 환율 하락에 따른 채무 변화, 신규 대주와의 협의 결과 등을 반영한 새 채무변제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벨기에 정부와의 임대차 연장도 또 다른 정상화 축이다. 제이알은 파이낸스타워의 본질적인 가치가 소송 결과보다 벨기에 연방정부의 안정적인 임차와 장기 운영구조에 달려 있다고 보고 건물관리청과 임대차 기간 연장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 관계자는 “현재 벨기에 건물관리청과 임대차 기간을 장기간 추가 연장하는 구체적인 협의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고, 캐시트랩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유수한 금융회사와 금융 조건을 협의하는 등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자율구조조정(ARS) 졸업 및 리츠 정상화를 위해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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