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누가 써" 퇴물 취급받더니…AI 시대 '사상 최고가' 됐다

입력 2026-09-09 09:25   수정 2026-09-09 09:57



"요즘 누가 HDD 쓰나 했더니…."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반도체를 넘어 기존 산업의 가격 체계까지 뒤흔들고 있다.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자본과 생산능력이 집중되면서 범용 메모리와 저장장치의 공급이 줄고, 대체 제품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연쇄적인 가격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SSD에 밀려 쇠퇴하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7~9월기 HDD 대량 거래 가격은 데스크톱PC와 감시카메라용 3.5인치 1테라바이트(TB) 제품이 전 분기 대비 15% 오른 개당 67.7달러 안팎에 결정됐다. 노트북PC용 2.5인치 1TB 제품도 10% 상승한 61.2달러 안팎을 기록했다. 두 제품 모두 6개 분기 연속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격 상승의 출발점은 AI 데이터센터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로 데이터센터용 SSD 수요가 급증하자 제조사들이 관련 제품에 생산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PC 등 범용 제품의 공급이 줄면서 SSD 지표 가격은 지난 4~6월기까지 1년 동안 3.5배로 뛰었다. 비싸진 SSD 대신 HDD를 찾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HDD 제조사들 역시 데이터센터용 대용량 제품인 ‘니어라인’에 경영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시게이트가 일부 저용량 제품의 생산 종료를 추진하는 등 범용 HDD 공급은 오히려 축소되는 추세다. SSD의 대체 수요는 늘어나는데 HDD 생산은 줄어드는 수급 역전이 발생했다.

이 같은 현상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AI 서버에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일반 D램보다 생산 공정이 복잡하고 더 많은 생산 자원을 필요로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업체들이 HBM 생산을 확대하면 범용 D램에 투입할 수 있는 생산능력이 제한된다. AI용 제품의 호황이 일반 PC와 스마트폰용 메모리의 공급 여건에도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SSD의 핵심 부품인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용 고용량·고성능 제품에 투자가 집중되면 소비자용 저장장치의 공급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HDD 가격 상승은 이러한 변화가 대체재 시장까지 전파된 결과다. AI 서버에 직접 사용되지 않는 제품조차 AI 투자 붐의 영향을 받는 셈이다.

중국 시장의 수요 회복도 HDD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중국 감시카메라용 수요는 7~9월기에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자국산 PC 생산 확대에 따른 특수도 이어지고 있다. 감시카메라는 고해상도 영상 데이터를 대량으로 저장해야 해 HDD를 SSD로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AI 인프라 투자가 기존 산업의 공급망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우선적으로 생산능력과 자원을 흡수하면 범용 제품의 공급이 줄고, 가격 상승이 대체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의 성장 수혜가 특정 첨단 제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의 예상치 못한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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