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의 지적처럼 사람은 종종 ‘본 것을 믿는’ 대신 ‘믿는 것을 본다’. 외교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오류다. 상대의 발언을 원하는 대로 해석하면 그 안에 담긴 경고를 놓치기 쉽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러브콜’에 “이란 다음은 북한”이라는 경고가 담겼을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북한의 반응은 복합적이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한·미 연합훈련 축소에도 “도발적·침략적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비핵화 회담 거부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두 정상의 관계를 “훌륭하다”고 평가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추가 파병 가능성을 일축했다.
우리 정부는 ‘페이스메이커’를 재차 자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고 국가정보원과 통일부는 미·북 대화의 징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북한이 대화에 응해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지는 불분명하다. 대화 성사를 기대하는 것만큼 불발 이후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구도 이면을 살펴야 한다. 정부가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지원 방안을 협의해 왔는데도 트럼프는 “한국은 중동에서 미국을 돕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다. 파병 규모와 시기 등은 결국 미국 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미국은 파병 시기를 11월로 제시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지원’에서 ‘파병’으로 태세를 전환했지만 서두르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미 투자는 이달 1호 투자 합의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작년 7월 합의 이후 1년2개월여 만이다. 같은 시기에 합의한 일본이 2월에 1차 프로젝트를 결정한 것에 비하면 7개월 늦었다. 시간을 끌면서 손상된 한·미 관계를 상쇄할 만큼 1호 투자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투자 합의만으로 한·미 관계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양국이 서로 다른 문제를 말하는 사례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을 두고 미국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지적하는데 우리 정부는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고 답하는 식이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대미 투자는 꽉 막힌 한·미 관계에 바늘구멍 하나 뚫는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그 구멍을 넓히려면 듣고 싶은 말부터 걷어내고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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