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돈 떼먹은 홈플러스가 너무 밉죠. 하지만 홈플러스가 회생해야 저희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홈플러스와 오랫동안 거래 관계를 이어온 한 납품업체 고위 임원은 최근 기자에게 “홈플러스가 휘청거리던 올해 초부터 다른 유통업체 태도가 고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파산 위기에 내몰린 홈플러스가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2일 홈플러스가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받아들이면서다.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대형마트 2위 기업이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홈플러스 회생 절차에서 막판 최대 변수는 납품업체 등 공익채권자의 분할 상환 동의 여부였다. 이들이 홈플러스에 식료품 등을 공급하고도 제때 받지 못한 납품대금만 5032억원에 달했다. 당장 현금흐름이 막힌 중소업체로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홈플러스가 내놓은 변제안은 이들에게 가혹했다. 2028년 2월까지 전체 미지급 납품대금의 0.5%만 갚고 나머지는 2030년 2월에 가서야 전액 상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변제안이 공개되자 납품업체 사이에선 “중소 납품사에 회생 부담을 떠안기는 불합리한 구조이자 기약 없는 희망 고문”이라며 반발이 터져 나왔다. 최장 4년간 수십억~수백억원의 자금이 묶여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당연한 반응이었다. 일부 업체는 공익채권단 협의회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결국 공익채권이 있는 납품업체 중 64%가 분할 상환에 찬성표를 던지며 회생안이 법원 문턱을 넘어섰다.
받아야 할 돈 수천억원을 물린 납품업체가 불리한 조건의 회생안을 수용한 이면에는 유통업계의 ‘갑을 구조’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납품사는 상품을 공급할 대형 유통채널이 여러 곳 있어야 그나마 가격 협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홈플러스가 빠져나간 자리를 쿠팡과 이마트 등 과점적 지위를 보유한 사업자가 메우면 단가 인하 요구 등 납품업체를 향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구도는 기업 간 거래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로서도 홈플러스가 살아남아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지는 것이 더 좋다. 유통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사라진 과점 시장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와 협상력이 약한 중소 공급자다.
홈플러스는 납품업체의 양보와 희생으로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이제 하루빨리 경영을 정상화해 직원에게 안정적 일터를 제공하고 납품업체에는 든든한 판매처가 돼야 한다. 홈플러스 경영진은 돈 떼인 채권자가 응원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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