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래대응기금, 재정분권까지 고려해야

입력 2026-09-09 18:37   수정 2026-09-10 14:05

유례없는 반도체 수출 호조가 나라 곳간을 두둑하게 채우고 있다. 올해 법인세와 소득세는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문제는 이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정부는 늘어난 세수를 모두 쓰지 않고, 최근 10년간 내국세 증가 추세를 웃도는 추가세수를 따로 모아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호황이 안겨준 결실을 다음 세대를 위한 마중물로 삼아 국가의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문제는 재원 출처와 운영 방식이다. 정부는 내국세에서 기금 적립액을 먼저 떼어낸 뒤, 남은 금액에만 지방교부세 법정률 19.24%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세수 증가분 만큼 내년도 지방교부세도 함께 늘어날(전년대비 48.1%) 전망이었다. 하지만 정부 발표대로 교부세 산정 이전 단계에서 돈을 따로 떼어 기획예산처 기금으로 돌리면, 전국적으로 약 30조5000억원에 달하는 지방교부세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로 신음하며 교부세 대폭 증액을 애타게 기다려 온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기대는 물거품이 될 듯하다.

정부는 기금 안에 지방계정 15조3000억원을 따로 편성해 지방에 재투자하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방교부세는 지자체가 스스로 알아서 쓸 수 있는 일반재원인 반면, 기금은 중앙정부가 정해준 용도 안에서만 움직이는 돈이다. 지방 입장에서 보면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가 생기는 셈이며,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은커녕 중앙에 대한 예속만 더 깊어질 뿐이다. 지방 몫이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실제로는 중앙부처의 사전 협의와 승인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불편한 종속 관계를 겪어본 전국의 지자체들은 바로 이해할 것이다.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추가세수 가운데 지방 몫만큼은 중앙이 틀어쥐지 말고, 별도의 ‘지방발전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이 직접 운영하도록 맡기면 된다. 지방교부세라는 제도 자체가 애초 재정 자율성과 지역 간 균형을 위해 태어난 만큼, 그 몫으로 조성하는 기금 역시 자율성 확대와 비수도권 강화에 무게를 실어야 헌법적 가치와 본래 취지에 부합할 것이다.

또 재정분권까지 고려해 전국 242개 지자체가 참여하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와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두 대표기관에 공동 운영권을 맡겨야 한다. 지방의 독자적 운영 능력을 믿기 어렵다면, 한시적으로 행정안전부까지 참여하는 중앙·지방 공동 운영 방식도 검토해 볼 만하다.

아울러 인구 감소에 맞서는 지방 간 공동 대응, 하천·산림 정비, 재난 예방, 농촌 정주 여건 개선 등 지역 현장에 절실히 요구되는 사업에 지자체가 스스로 판단해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하면 재정 자율성은 물론 예산 집행의 효율성까지 함께 높일 수 있다.

기왕에 미래대응기금을 만들 요량이라면, 지방의 미래까지 멀리 내다보고 재정분권·지방분권·균형발전을 함께 아우르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나라 곳간은 두둑해지는데 지방은 오히려 중앙에 더 옭매이는 구조, 이런 후진적인 중앙·지방 체계부터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진국형 국가로 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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