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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멤버, 한국어 노래 없이 성공"…'K팝 DNA'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입력 2026-10-19 14:00  

"한국인 멤버, 한국어 노래 없이 성공"…'K팝 DNA'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h3 data-path-to-node="2"></h3>K팝의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문화산업계 안팎에서는 근본적 물음이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한국인 멤버가 단 한 명도 없고, 한국어 가사로 노래하지 않아도 K팝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 정체성의 질문에 가장 파격적이고 실증적인 답을 내놓은 인물이 바로 박진영이었다. 그는 음악이라는 완제품을 수출하던 1단계와 다국적 멤버를 영입하던 2단계를 넘어, 마침내 한국의 혹독하고 정교한 인큐베이팅 시스템 자체를 바다 건너 이식하는 ‘현지화 2.0’, 즉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Globalization by Localization)’를 선언했다.

그 거대한 실험의 첫 번째 시험대는 바로 일본이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일본 최대 음반사 소니뮤직과 손 잡고 걸그룹 오디션 프로젝트 ‘니지 프로젝트(Nizi Project)’를 가동했다. 지원 조건은 명확했다. 일본 현지인들을 선발해 JYP 본사의 트레이닝을 거치게 한 뒤 현지에서 데뷔시킨다는 구상이었다. 이전까지의 한류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완성품의 해외 배송’이었다면, 니지 프로젝트는 ‘K팝을 빚어내는 생산 공정 자체의 수출’이었다.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일본 전역 8개 도시와 미국 LA, 하와이에서 치러진 예선부터 도쿄 합숙, 서울 JYP 본사에서 진행된 6개월간의 최종 합숙 과정은 일본 지상파 닛폰TV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훌루(Hulu)를 통해 방영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원석에 불과했던 일본 10대 소녀들이 한국식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보컬, 칼군무, 인성, 자기관리 능력을 흡수하며 프로 아티스트로 변모해 가는 과정은 일본 대중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겼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별점은 박진영이라는 프로듀서의 심사 방식이었다. 그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자극적 독설 대신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줘라", "과정이 완벽하면 결과는 따라온다",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성실함과 진실함이다" 등의 따뜻하면서도 원칙적인 피드백을 건넸다. 이는 단지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지쳐 있던 일본 기성세대와 청년층의 마음까지 울렸다. 박진영의 심사평은 현지 서점가에서 '리더십 어록'으로 출간될 만큼 거대한 사회 현상으로 번졌다.

2020년 결성된 9인조 걸그룹 ‘니쥬(NiziU)’는 데뷔와 동시에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프리 데뷔곡 ‘Make You Happy’의 포인트 안무 ‘줄넘기 댄스’는 일본 남녀노소 사이에서 폭발적인 밈을 만들어내며 음원 스트리밍 1억 회를 최단기간에 돌파했다. 정식 데뷔 싱글 《Step and a step》 역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정상을 밟았으며, 정식 데뷔 29일 만에 일본 최고 권위의 연말 무대인 NHK 《홍백가합전》에 입성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니쥬의 폭발적 성공은 글로벌 음악 비즈니스 모델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첫째, K팝의 본질이 ‘혈통이나 국적’이 아니라 ‘시스템과 제작 방법론’에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어 한 줄 없이 전원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팀이었지만 그들이 선보인 퍼포먼스의 완성도, 치밀한 프로듀싱, 독특한 팬덤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명백히 K팝 문법 그 자체였다. K팝이 특정 국가의 민족적 장르를 넘어 전 세계 팝 음악 시장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운영체제(OS)’이자 글로벌 표준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둘째, 막대한 해외 수출 리스크의 제거였다. 현지 인력으로 팀을 구성함으로써 해외 진출 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던 비자 문제, 언어 장벽, 반한 감정이나 외교적 변수와 같은 문화적 마찰을 원천 차단했다. 현지 대중에게는 거부감 없는 ‘자국의 스타’로 소비되면서도, 수익의 파이프라인은 고스란히 시스템을 공급한 JYP로 유입되는 고수익 라이선스 비즈니스가 완성되었다.

박진영의 ‘현지화 2.0’ 실험은 "K팝에서 'K'를 떼어내면 무엇이 남는가?"라는 해묵은 논쟁에 명쾌한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은 바로 20여 년간 축적된 기획, 선발, 트레이닝, 콘셉트 메이킹, A&R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대체 불가능한 제작 DNA’였다.

일본 시장에서 입증된 이 확신은 박진영의 오랜 숙원이었던 거대한 미주 시장으로 다시 향하게 만들었다. "아시아의 현지화가 통했다면, 세계 팝의 본산인 미국 현지에서도 K팝 시스템으로 주류 걸그룹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대담한 도약, 즉 유니버설 뮤직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와 손잡고 감행한 ‘A2K 프로젝트’의 거대한 서막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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