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계 브랜드들이 무브먼트 밖으로 경쟁 무대를 넓히고 있다. 기계식 무브먼트의 성능과 장인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세라믹과 티타늄, 탄소섬유 등 기존 고급 시계에서 낯설었던 소재가 새로운 차별화 수단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업계에 따르면 루이 비통은 오는 26일 '몬테레이 세라믹'을 출시한다. 지난해 옐로 골드 한정판에 이어 이번에는 그린과 글로시 블랙 세라믹 모델을 상시 판매 컬렉션에 추가한다.
몬테레이는 루이 비통이 1988년 처음 내놓은 손목시계 LV I과 LV II의 애칭이다. 프랑스어로 손목시계를 뜻하는 '몽트레(montre)'를 미국식으로 발음한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가 디자인한 이 시계는 조약돌처럼 둥근 케이스에 크라운(시간을 맞추는 꼭지)을 3시 방향이 아닌 12시 방향에 단 것이 특징이다.
빈티지 LV I과 LV II는 최근 몇 년 새 컬렉터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았고 여성복 패션쇼에도 잇달아 등장했다. 이에 이번 신제품은 LV II의 디자인을 계승하면서 세라믹을 입혔다.
세라믹은 마모와 부식에 강한 소재다. 스틸보다 표면이 단단해 스크래치에 강하고, 시간이 지나도 녹슬거나 부식될 우려가 적다. 다만 원하는 색과 형태를 일정하게 구현하려면 높은 수준의 가공 기술이 필요하다.
루이 비통은 원하는 색감과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세라믹 가루에 지르코늄 산화물과 안료를 섞어 압축한 뒤 기계로 깎아 형태를 만들고 1000도 이상에서 굽는 과정을 거쳤다. 고온에서 소재가 수축하고 뒤틀리는 만큼 완성 크기를 미리 계산해야 하고, 구운 뒤에는 기계로 다시 깎을 수 없어 장인이 손으로 갈고 광을 낸다.
색을 맞추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글자와 눈금을 찍을 때마다 80도에서 1시간씩 굽고, 문제가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에 따르면 그린 다이얼은 원하는 색조를 찾기 위한 안료 배합과 테스트에만 4주가 걸렸다.

내부는 원작의 배터리식 쿼츠 무브먼트 대신, 손목 움직임으로 태엽이 감기는 기계식 오토매틱 무브먼트 'LFT MA01.02'를 탑재해 클래식한 가치를 더했다. 지름은 원작과 같은 37㎜다.
기존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소재를 바꾸는 방식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나타난다. 대표 모델의 형태를 크게 손대지 않고도 색과 무게, 착용감에서 차이를 만들 수 있어서다.
롤렉스는 2019년 18K 화이트골드로 내놓은 '요트-마스터 42'를 2023년 티타늄 버전으로 선보였다. 5등급 티타늄 가운데 브랜드 자체 기준으로 엄선한 합금인 'RLX 티타늄'이다.
이는 오이스터스틸로 만들었을 때보다 무게가 3분의 1가량 가벼운 수준이다. 롤렉스는 앞서 2022년 심해 잠수용 '딥씨 챌린지'의 케이스와 브레이슬릿(금속 시곗줄) 전체를 이 소재로 만들었다. 티타늄은 가볍고 부식에 강하지만 강도가 높아 깎고 다듬기가 까다롭다. 롤렉스는 이를 위해 별도의 생산 공정과 표면 마감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아예 새로운 하이브리드 소재를 개척한 경우도 있다. IWC 샤프하우젠은 티타늄과 세라믹의 핵심 장점을 결합한 자체 소재 '세라타늄'을 선보였다. 올해 공개한 우주비행용 시계 '파일럿 벤처러 버티컬 드라이브'에는 흰색 산화지르코늄 세라믹 케이스와 세라타늄 베젤·케이스백을 적용해 미국 우주기업 바스트의 유인 우주비행용 인증까지 획득했다.

위블로는 세라믹의 색으로 승부했다. 세라믹은 높은 온도에서 굽는 과정에서 안료가 타거나 변색되기 쉽다. 이 때문에 세라믹 시계는 오랫동안 검은색과 흰색이 대부분이었다. 위블로는 굽을 때 압력과 열을 함께 조절해 안료가 타지 않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2018년에는 이 기술로 대표 모델 '빅뱅'의 케이스를 선명한 빨간색 세라믹으로 만들었고, 이후 2021년 노란색, 2024년 주황색 모델을 잇달아 내놨다.
금은 여전히 명품 시계의 상징이다. 하지만 몬테레이를 옐로 골드로 선보였던 루이 비통은 올해 세라믹을 택하고, 롤렉스가 화이트골드에 이어 티타늄 모델을 주력으로 내세우는 모습은 시계 업계의 흐름을 대변한다. 이제 명품 시계의 신제품 경쟁은 화려한 귀금속의 영역을 넘어, 까다로운 첨단 소재를 다루는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겨루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