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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걸로, 새 걸로, 있던 걸로…‘요람에서 무덤으로’ 학습지 3사의 변신

입력 2026-09-27 13:00  

남의 걸로, 새 걸로, 있던 걸로…‘요람에서 무덤으로’ 학습지 3사의 변신



아이들을 가르치던 학습지 기업들이 이제 인생의 마지막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웅진씽크빅’의 웅진, ‘구몬·빨간펜’의 교원, ‘눈높이’의 대교 등 국내 대표 교육기업 3사가 상조·장례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방식은 제각각이다. 인수합병(M&A)으로 업계 1위 회사를 사들이는가 하면, 상조회사를 직접 설립하거나 기존 시니어 계열사에 장례 서비스를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목표는 같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고령화로 빠르게 커지는 시니어 시장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학습지와 상조가 ‘회원 모집→월 단위 결제→장기 고객관리’라는 닮은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도 교육기업의 상조시장 진출을 재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8830억원 베팅한 웅진...'한 방'에 업계 1위

가장 과감한 선택을 한 곳은 웅진이다. 웅진은 지난해 6월 약 8830억원을 들여 프리드라이프 지분 99.77%를 인수했다. 기존에 없던 사업을 키우기보다 업계 1위 사업자를 통째로 사들이는 길을 택했다. 인수 완료 후 사명도 웅진프리드라이프로 바꿨다. 웅진의 올 상반기 반기보고서에도 프리드라이프가 지난해 6월 13일 그룹 계열사로 편입됐으며 웅진프리드라이프로 사명을 변경했다고 명시돼 있다.

웅진에게 상조사업은 이미 그룹의 주요 축이다. 웅진은 반기보고서에서 기존 교육·콘텐츠 사업에서 확보한 고객 접점을 활용해 라이프케어와 서비스 플랫폼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룹 사업영역에도 교육·출판과 레저에 이어 ‘라이프케어 및 장례서비스’를 별도 영역으로 분류했다.

몸집도 압도적이다. 웅진프리드라이프의 올해 3월 기준 선수금은 2조9734억원으로 국내 최대다. 총 자산은 3조2823억원으로, 2위 교원라이프(1조8286억원)와 3위 소노스테이션(1조2849억원)을 합친 규모보다 크다.

웅진은 장례에만 머물지 않고 프리드라이프 회원을 다른 그룹 사업으로 연결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웅진프리드라이프는 장례 외에 웨딩과 크루즈, 어학연수, 헬스케어 등으로 상조상품을 전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올해는 상조업계 최초로 전세선을 통째로 빌린 북해도 크루즈 상품도 내놨다. 지난 6월 부산을 출발해 하코다테와 오타루를 도는 6박7일 일정으로 운항했다. 실제 올해 1~8월 웅진프리드라이프의 전환서비스 이용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두 배로 늘었다.
상조회사 직접 키운 교원...선수금 업계 2위

교원은 웅진보다 10여 년 먼저 시장을 봤다. 2010년 교원라이프를 새로 설립하고 이듬해 상조서비스를 내놨다. 남의 회사를 사들인 웅진과 달리 사업 초기부터 상조회사를 직접 키운 사례다.

그 결과 교원라이프는 올 3월 말 선수금 1조7369억원을 기록해 보람그룹을 제치고 업계 2위로 올라섰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선수금이 16.5% 늘었다. 업계에서는 교육·여행·가전 등 교원그룹 계열사와 연계한 전환서비스 확대가 회원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교원의 특징은 상조상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조와 그룹 계열사의 상품을 직접 연결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상조상품에 낸 돈을 장례 대신 교원투어의 여행이나 헬스케어, 웨딩·결혼정보 등의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교원라이프의 올 상반기 전환서비스 이용 실적은 전년 동기보다 137% 증가했다. 이 가운데 여행이 전체 이용의 64%로 가장 많았고 여행 전환서비스만 놓고 보면 이용 실적이 169% 뛰었다. 교원투어라는 그룹 내 여행사를 상조회원 확보와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작용했다.

장례식장도 직접 운영하며 상조사업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다. 장례 전문 브랜드 ‘교원예움’을 앞세워 현재 전국에서 8개 직영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332억원이던 장례식장 사업 매출도 증가 추세다. 지난 2월 충주시민장례식장을 추가하면서 서울·경기·충청·강원·영남권으로 직영망을 넓혔다. 기존 7개 장례식장은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 위생등급 최고 단계인 ‘매우 우수’를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장례 전후를 넘어 일상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의료기관과 건강관리 서비스를 개발하고 골프용품 업체와 제휴하는가 하면 상속·증여 상담까지 붙였다. 상조회원을 죽음이 임박했을 때 만나는 고객이 아니라 수십 년간 서비스를 이용하는 ‘라이프케어 회원’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요양부터 시작한 대교...상조는 '후불제'

대교의 길은 또 다르다. 전통적인 선불식 상조회사를 세우는 대신 요양과 돌봄을 먼저 장악한 뒤 장례까지 영역을 내려가는 전략이다.

대교는 2022년 ‘대교뉴이프’를 출범시키고 2023년 별도 법인으로 분사했다. 대교가 올해 제출한 반기보고서에서도 기존 교육서비스와 별도로 ‘시니어사업’을 주요 사업부문으로 분리하고 있다. 대교뉴이프 브랜드 출범은 2022년 1월로 공시돼 있다.

대교뉴이프는 데이케어센터와 방문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요양보호사를 교육하는 등 장기요양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수도권 장기요양센터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서비스 거점을 넓혔다. 대교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보면 시니어사업 매출은 상반기 153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매출(266억원)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다만 수익성은 숙제다. 대교 시니어사업은 올 상반기 13억원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1.8%에서 지난해 4.1%, 올 상반기 4.8%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장기요양센터 인수와 신규 사업 투자가 이어지는 성장 단계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대교가 장례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해 1월이다. 대교뉴이프가 ‘나다운 졸업식’이라는 상조서비스를 선보였다. 다만 웅진프리드라이프나 교원라이프와는 구조가 다르다. 고객이 매달 수년간 돈을 미리 납입하는 선불식 상품이 아니라 장례가 발생했을 때 비용을 내는 후불제다.
1회 10만원의 멤버십에 가입하면 최대 5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실제 장례비는 이용 시점에 지불한다. 엔딩노트와 웰엔딩 교육, AI 케어콜 등도 붙였다. 대교뉴이프가 엄밀한 의미에서 대형 선불식 상조회사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다.

대교는 장례 그 자체보다 ‘시니어 고객의 마지막 단계까지 서비스 영역을 연장한다’는 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요양과 방문돌봄을 받던 고객이 장례까지 같은 브랜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아이 줄자 부모, 조부모까지..."사업 방식도 닮아"

학습지 3사가 상조·시니어시장으로 모이는 가장 큰 배경은 인구구조 변화다. 저출생이 장기화되면서 유·초등학생을 주 고객으로 삼아온 교육기업은 본업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졌다. 반면 고령인구가 증가하면서 장기요양과 상조, 건강관리, 여행 등 시니어 관련 시장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저출생만으로 세 회사의 선택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학습지와 상조는 상품은 완전히 다르지만 판매 방식은 의외로 닮았다.

학습지 회사는 방문교사와 상담·영업조직을 통해 회원을 모집한 뒤 매달 회비를 받고 장기간 고객을 관리한다. 상조 역시 상담·방문판매 조직이 회원을 확보하고 월 납입금을 받으며 수년 또는 수십 년간 계약을 유지한다. 상품 개발보다 전국 영업망과 고객관리 능력이 사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웅진이 프리드라이프를 인수할 당시부터 웅진씽크빅의 교육 영업망과 프리드라이프의 상조 영업망을 결합하는 방안이 시너지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던 이유다. 실제 웅진프리드라이프는 그룹 편입 이후 교육·도서·레저·헬스케어 인프라와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학습지 업체가 오랫동안 쌓아온 가족 단위 고객 접점도 강점이다. 학습지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이지만 계약을 결정하고 돈을 내는 사람은 부모다. 10~20년 전 자녀 교육상품을 구매하던 30~40대 부모가 이제 건강관리와 여행, 요양, 상조상품을 고민하는 50~60대로 이동하고 있다. 고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은 셈이다.

상조산업 자체가 장례업을 넘어선 것도 교육기업 진입을 쉽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미리 돈을 내고 나중에 장례를 치르는 상품’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여행·웨딩·가전·헬스케어 등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품이 일반화하고 있다. 선수금을 기반으로 확보한 대규모 회원을 여러 생활서비스와 연결하는 회원제 라이프케어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선불식 할부거래 가입자는 1131만명이다. 가입자가 10만명 이상인 17개 대형 업체가 전체 가입자의 90.8%, 선수금의 90%를 차지할 만큼 대형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학습지 회사의 핵심 자산은 책 자체라기보다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신뢰와 회원관리·판매 조직”이라며 “교육기업들이 기존 역량을 가장 손쉽게 확장할 수 있으면서 시장 자체는 커지는 분야가 시니어와 라이프케어”라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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