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용 레일과 산업용 호스 등 전통 제조업 산물이 데이터센터에서 새로운 쓰임새를 찾고 있다. 인공지능(AI) 금광 붐의 수혜를 보는 ‘곡괭이’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랜 업력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활용해 AI산업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사양을 충족하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6년 창업한 이 회사는 서랍용 슬라이드 레일을 제조하던 곳이다. 2000년 이후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등 어려움을 겪은 끝에 AI 시대에 뜻밖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축적한 3800건 이상의 특허가 기반이 됐다.
1911년 창업한 미국 산업용 벨트·호스 제조업체 게이츠인더스트리얼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용 벨트부터 산업기계용 호스까지 생산하며 쌓은 산업용 고무 가공 기술이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고 있다. 고온·고압 액체를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호스를 활용해 AI 서버 열을 식히려는 데이터센터가 늘고 있어서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데이터센터 사업 관련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도 6.6% 늘었다.
초정밀 공구를 제조하는 중국 광둥디테크테크놀로지도 AI 붐 속에 ‘숨겨진 곡괭이’ 중 하나다. 인쇄회로기판(PCB)에 미세한 구멍을 뚫는 초소형 드릴비트가 이 회사의 대표 제품이다. AI 서버용 PCB는 일반 서버보다 층수가 많고 배선 밀도가 높다. 디테크는 지름 0.20㎜ 이하 초미세 구멍과 길이에 비해 직경이 매우 좁은 고(高)종횡비 구멍 등을 뚫는 특수 드릴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 붐에 따른 수혜가 반도체 및 서버를 넘어 다른 제조업 분야로 이어지는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세계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누적 자본지출이 2030년 5조2000억달러(약 706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25%는 전력·냉각 등 인프라 업체에, 15%는 건설·개발 업체에 흘러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맥킨지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AI산업이 빠르게 발전해 반도체 외 부품·장비 등의 요구 성능이 함께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랙(데이터센터 내 서버 설치) 밀도가 높아져 액체 냉각이 신규 데이터센터의 기본 요구사항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단순 냉각 성능뿐 아니라 장기 신뢰성과 정비 용이성, 누수 대응 능력까지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같은 전망이 킹슬라이드웍스 등의 장기 실적까지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맥킨지는 수년 단위로 변하던 데이터센터 기자재 요구 사양이 매년 또는 그보다 짧은 주기로 갱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기술 요구 수준을 맞출 수 있는지에 따라 새로운 수혜 기업이 탄생하고 다른 기업은 몰락할 수 있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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