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IPO)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 일각에선 곧바로 ‘중복상장’ 우려가 제기됐다. 자회사가 별도로 상장할 경우 기존 주주의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솔리다임 상장은 오히려 SK하이닉스의 재무 부담을 덜어주는 전략적 선택지에 가깝다.국내 투자자가 중복상장에 민감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모회사의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상장해 모회사 주주가 큰 디스카운트를 경험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복상장이 모회사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상장되는 자회사가 모회사 기업가치의 핵심을 떼어낸 경우다. 출발점이 다른 상장을 동일한 잣대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SK하이닉스 시장가치의 원천은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다. 반면 솔리다임은 2021년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해외 법인으로, 인수 초기에는 수조원대 적자를 낸 비주력 자산이었다. 기존 핵심 사업을 분리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사들인 사업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물적분할 상장과는 구조부터 다르다.
최근 솔리다임의 기업가치가 최대 1500억달러까지 거론되는 것도 생성형 AI 확산에 따른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수요 급증이 불러온 재평가의 결과다. 모회사 밸류에이션의 근간인 D램·HBM 경쟁력이 온전히 유지되는 한, 솔리다임 상장을 ‘본체 가치 훼손’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최근 주가 조정 역시 솔리다임 상장 추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 조절과 거시경제 변수가 겹쳤고, 같은 기간 글로벌 반도체·하드웨어 가치사슬 전반이 동반 조정을 받았다.
두 사건의 시점이 겹쳤다는 사실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장의 본질은 가치 희석이 아니라 자본 조달과 리스크 분산에 있다. AI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려면 대규모 설비투자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솔리다임은 중국 다롄 팹의 한계를 넘어 미국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상장 없이 이를 추진한다면 그 투자 부담은 고스란히 모회사 SK하이닉스의 재무제표에 쌓이게 된다.
반대로 솔리다임이 미국 자본시장에서 수십조원 규모의 자금을 독자적으로 조달하면 SK하이닉스는 본사의 현금 유출 없이 미국 내 낸드·eSSD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대미 관세 장벽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헤지하는 효과도 낸다. 모회사의 자금에 의존하는 자회사가 아니라 스스로 자본을 조달해 성장하는 독립적 축이 되는 셈이다. 모회사의 자본을 소모하는 대신 외부 자본으로 성장을 이어간다면 그만큼 SK하이닉스는 핵심 사업 투자와 주주환원에 활용할 재무적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지분율 희석이라는 단일한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해외 인수 법인의 정상적인 자본 확충 과정을 간과한 시각이다.
물론 SK그룹이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추가 상장이 이뤄지는 만큼 투명한 거버넌스와 모회사 주주를 위한 분명한 주주환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솔리다임 상장으로 확보되는 자본의 효익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경영진의 책무다. 그러나 정당한 거버넌스 감시와 주가 하락의 책임 전가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중복상장 논쟁에 매몰돼 글로벌 AI 메모리 사이클의 변화와 기업의 장기 펀더멘털을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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