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평생 물방울을 그린 김창열은 북한산 전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울 평창동 집에서 30여 년을 살았다. 2021년 작고하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온 김창열의 공간이 대중과 만난다. 지난 5월 문을 연 ‘김창열 화가의 집’이다. 1988년 준공된 이곳은 김창열의 국내 유일한 작업실로 꼽힌다.
김창열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떠올리며 이 집을 지었다. 중앙에 우물이 있는 ‘ㄷ’자 형태의 옛집을 살리되 우물이 있던 자리엔 빛이 쏟아지는 천장을 둬 그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가파른 경사지에 한옥을 모티프로 건립한 이 집은 대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다. 지하 2층, 지상 2층 총 네 개 층 가운데 1층에는 두 개의 전시실을 마련했다.

지금 이곳에선 개관전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이 한창이다. 회화 19점, 판화 4점, 드로잉 1점 등 총 24점을 선보인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진 김창열 작품 세계의 변화를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8월 종료할 예정이던 전시는 뜨거운 관람 열기에 힘입어 오는 12월 20일까지 연장됐다.
김창열이 생활하던 2층은 카페로 변신했다. 시원하게 트인 통창 너머로 북한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선 생전 그가 바라봤을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좁고 가파른 계단 아래 지하 작업실은 작가가 사용하던 공간과 최대한 가깝게 복원했다. 켜켜이 꽂힌 커다란 캔버스와 바탕재만 부착된 미완성 작품, 무심히 놓인 대형 회화 작품이 관람객을 반긴다. 프랑스 파리 작업실보다 넓고 층고가 높은 이곳에서 작가는 주로 대형 작업을 완성했다. 김창열 화가의 집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오후 6시 운영된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서울 연희동에 문을 연 박서보미술관 3층, 8m 높이의 정사각형 전시실에는 백색 ‘묘법’ 작품 세 점이 서 있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1931~2023)가 “미술관이 생기면 걸겠다”며 2023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붙들고 있던 그림이다.
8월 21일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원래 작은 기념관으로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2023년 박서보가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추진하던 공립미술관 건립이 중단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박서보의 차남인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은 부친이 생활하고 그림을 그리던 집 바로 옆에 지하 2층에서 지상 3층까지 5개 층에 건축면적 2000㎡ 규모로 설계를 키웠다. 건물은 전시실 세 곳과 워크숍 공간, 층마다 야외 정원을 갖췄다. 설계는 최문규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맡았다.

전시실 세 곳의 성격은 전부 다르다. 지하 2층은 창 너머로 정원을 들이고, 2층은 빛을 완전히 차단한 검은 상자다. 3층은 반투명 유리로 둘러 온종일 빛이 들어온다. 최 교수는 “남향으로 길게 누운 재단 건물이 여름 정원이라면 북향인 미술관은 가을과 겨울 정원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박서보의 작품으로만 전관을 채우는 공간이 아니다. 박 이사장은 “이곳을 박서보의 성전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며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부터가 그렇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서보의 회화 25점을 베트남 출신 프랑스 화가 흐엉 도딘(81)의 회화 17점과 함께 선보인다.
박서보미술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1시~오후 6시 연다. 입장료는 5000원, 예약 없이 현장에서 표를 살 수 있다. 개관전은 2027년 1월 3일까지.

서울 서교동 홍대 앞 번화가 놀이터에서 골목을 몇 번 꺾어 들어가면 붉은 벽돌 담장이 나온다. 9월 1일 처음 일반에 공개된 ‘윤형근의 집’이다. 담 안쪽 이층집 1층 바닥에는 검푸른 물감이 넓게 배어 있다. 윤형근(1928~2007)이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그린 흔적이다.
이 집은 원래 1963년 현대미술 거장 김환기(1913~1974)가 국민주택으로 분양받은 곳이다. 1967년부터 사위 윤형근이 들어와 살았다. 1983년 윤형근은 옛집을 헐고 새로 지었다. 그는 이 집에서 2007년 세상을 떠났다.

1층은 작업실이다. 자연광 아래에서 그리려고 한쪽 벽 전체를 유리로 텄다. 긴 막대 끝에 붙인 큰 붓과 시기별 대표작이 그가 놓아둔 자리에 있다.
작업실 옆방은 자료실과 영상실이다. 드로잉과 작가 노트, 서신, 사진 등을 모아놨고 김환기가 사위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2층은 살림집이다. 거실과 부엌, 안방의 가구와 도자기, 오디오가 원래 자리를 지킨다. 추사 김정희의 현판이 걸린 벽 가까이에 미국 조각가 도널드 저드(1928~1994)의 조각이 놓였는데, 윤형근이 구매해 곁에 둔 것이다. 안쪽 방은 아내 김영숙을 기리는 자리로 꾸몄다. 그가 모은 물건과 그린 그림, 아버지 김환기와 어머니 김향안에게 받은 편지가 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만에 이 공간이 공개됐다. 유족으로 구성된 윤형근에스테이트가 보존과 복원을 맡았고, PKM갤러리가 운영을 총괄한다. 윤형근의 집 관람은 10월 17일 종료되며, 내년부터 봄·가을 시즌제로 운영된다. 관람료는 2만원이고 중학생부터 관람할 수 있다. 일·월요일, 공휴일은 쉰다.
강은영/성수영 기자 qboom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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